상원에 이어 하원서 결의안 만장일치로 채택
(시카고=연합뉴스) 김현 통신원 = 미국 의회가 '반(反) 린치법' 제정에 촉매 역할을 한 70년 전 사건의 주인공들에게 일반인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명예 훈장을 수여하기로 했다.
22일(현지시간) ABC방송과 의회전문매체 '더힐' 등에 따르면 전날 미 연방 하원은 지난 1955년 발생한 흑인소년 납치·살해 사건의 피해자 에멧 틸(당시 14세)과 작고한 그의 어머니 메이미 틸-모블리에게 '의회 황금 훈장'을 사후 수여하는 내용의 결의안을 표결에 부쳐 만장일치로 가결했다.
'2021 에멧 틸과 메이미 틸-모블리 의회 황금 메달 수여안'으로 이름 붙은 이 결의안은 작년 2월 코리 부커 연방 상원 의원(뉴저지·민주)과 리처드 버 연방 상원 의원(노스캐롤라이나·공화)이 공동 발의해 지난 1월 상원을 통과했다.
이어 버 의원은 지난 7월 틸의 81번째 생일을 기념하며 하원에 조속한 처리를 촉구한 바 있다고 더힐은 전했다.
버 의원은 "틸이 당한 참사와 살인자들에 대한 부당한 처분은 미국에 충격을 안겼고 인종차별 패악을 보게 했다. 틸과 그의 어머니가 겪은 불의, 이 사건이 민권운동에 미친 영향 등을 고려할 때 '의회 황금 훈장'을 사후 수여하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말했다.
틸 모자에게 수여될 훈장은 미 국립 아프리카계 미국인 역사박물관에 틸이 묻혔던 관과 함께 전시될 예정이다.
'의회 황금 훈장'은 미국 의회가 1776년부터 미국 역사와 문화에 주요 공헌을 한 이들에게 수여해온 최고 훈장으로, 상·하 양원에서 결의안이 통과되어야 한다. 1963년 제정된 '대통령 자유 훈장'과 동급이지만 대통령 자유 훈장 역대 수상자 수가 640여 명인 반면 의회 황금 훈장 수상자는 173명에 불과하다.
의회 황금 훈장의 첫 수상자는 조지 워싱턴(당시 장군), 흑인 수상자 가운데는 로자 파크, 재키 로빈슨 등이 포함돼있다.
시카고 소년 틸은 1955년 8월 친척들이 사는 미시시피주 소도시에 놀러갔다가 참변을 당했다.
그는 사촌들과 함께 간 식료품점에서 백인 기혼 여성에게 휘파람을 불었다는 이유로 여성의 남편 일행에게 끌려간 지 사흘 만에 처참히 훼손된 시신으로 발견됐다.
틸의 행위는 당시 미국 남부의 '인종차별적 사회 규범'을 위반한 것이었다고 ABC방송은 전했다.
틸의 어머니는 아들 장례식에서 관 뚜껑을 열어놓고 잔혹하게 폭행당한 아들의 모습을 공개했으며, 보도 사진과 함께 사건이 알려지면서 당시 흑인 민권운동의 기폭제가 됐다.
하지만 틸 살해 혐의를 받던 두 백인 남성은 당시 재판에서 무죄 평결을 받았다.
이 사건은 인종차별의 대표적 사례로 제시돼왔고 조지 부시 전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각각 2008년과 2016년 '미해결 민권 범죄에 관한 법령'에 서명하고 연방수사국(FBI)과 법무부에 사건 재조사 비용을 지원토록 했다.
이어 미국 의회는 올초 '에멧 틸 안티 린칭 법안'으로 이름붙인 '반 린치법안'을 최종 의결해 지난 3월 조 바이든 대통령이 공포했다. 미국 의회에서 린치 방지 입법이 수없이 시도됐으나 최종 승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법은 형사 처벌 권한이 없는 개인이나 단체가 특정인에게 임의로 가하는 사적 형벌(私刑) 즉 린치를 '인종차별 또는 편견에 근거한 범죄'로 규정하고 가해자를 최대 징역 30년형에 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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