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거치며 민주주의 가치 소생…전세계 권위주의에 역풍"

입력 2022-12-24 18:36  

"팬데믹 거치며 민주주의 가치 소생…전세계 권위주의에 역풍"
CNN "트럼프·푸틴 시대 저물어…러시아서도 반전 여론 비등"
이란 '히잡 시위', 중국 '백지 시위'…"억압적 정권들 밀려나"


(서울=연합뉴스) 김동호 기자 = 한때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으로 상징됐던 전세계적인 권위주의 득세 흐름이 과연 꺾인 것일까.
지난 수년간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의 혼란이 할퀴고 간 자리 곳곳에서는 권위주의·독재 정권에 저항하는 민중의 목소리가 울려퍼지며 민주주의 가치의 소생을 예고하는 모습이다.
미 CNN 방송은 23일(현지시간) 분석 기사를 통해 "민주주의가 여러 결함에도 불구하고, 팬데믹을 거치며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며 "코로나19가 창궐한 지 꼭 3년을 지나는 현재 독재국가가 더 우월한 사회 체제라는 그릇된 인식이 무너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2022년 말, 전 세계는 '동의'가 중요한 곳이며 실제로 사람들을 곤경으로부터 구할 수 있는 것은 '토론'일지 모른다"고 평가했다.
CNN에 따르면 한동안 사람들 사이에서는 서구 민주주의가 망가진 것 아니냐는 생각이 퍼져나갔다.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도구인 듯했던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가 오히려 포퓰리즘, 인종차별적 발언, 어설픈 코로나19 격리·봉쇄 방역조치와 그에 대한 음모론, 가짜뉴스에 대한 관용, 선거 부정 담론 등 온갖 허위 정보와 선동적인 주장을 담은 140자짜리 단문 메시지로 어지럽혀진 것만 봐도 그렇다.
게다가 트럼프 전 대통령이 '미국 제일주의'를 내세우는 와중에 러시아 및 북한과 거리를 좁히며 독재국가들의 활동 공간을 넓혀줬다.
돌연 전 세계를 휩쓸고 나선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등장이 권위주의 물결에 변곡점이 됐다.
푸틴 대통령은 성급한 봉쇄 시행과 '물백신' 조롱을 받은 자국산 스푸트니크 V 백신 고집 등으로 허둥대며 판단 능력에 허점을 보이다가, 지난 2월 우크라이나 침공이라는 오판에 이르렀다고 CNN은 지적했다.
영국 싱크탱크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가 최근 입수한 기밀문서를 보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 10일 만에 점령을 완료할 것으로 자신할 정도로 판세를 읽지 못했다.
우크라이나의 거센 저항을 마주한 러시아 장병이 잇따라 산화하자 푸틴 대통령은 주저하던 예비군 동원령 카드를 뽑아야만 했고, 그러자 러시아에서는 1990년대 이후 최대 규모의 반정부 시위대가 모여 전쟁 반대를 외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란에서 석 달 넘게 이어지고 있는 '히잡 시위'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지난 9월 스무 살을 갓 넘긴 여대생 마흐사 아미니(22)가 이슬람권에서 여성에게 착용이 강제되는 두건인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서에 끌려갔다가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이는 그간 이슬람교 성직자들이 통치하는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에 더해 수년간의 국제사회 제재, 전염병, 고물가 등으로 불만이 쌓여온 이란 시민의 마음에 불을 댕겼다.
결국 이달 초 이란 당국이 일명 '도덕 경찰'로 악명이 높은 지도순찰대의 폐지 방침을 밝힌 것을 두고 CNN은 "이란 현 정권의 종말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대중의 의지에 대한 굴복으로 간주될 것은 분명하다"고 언급했다.
최근 3연임을 확정 지으며 장기 집권의 토대를 굳히는 듯했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역시 팬데믹이 키워낸 '백지 시위'를 맞이해 시험대에 올랐다.
중국은 세계 각국이 하나같이 '위드 코로나' 기조로 돌아서며 방역을 사실상 해제하는 분위기 속에서도 나홀로 '제로 코로나'를 외치며 더 세게 방역의 고삐를 쥐어왔다.
잦은 봉쇄와 시도때도 없는 유전자증폭(PCR) 검사에 시달리며 일상 영위가 어려워진 중국인들의 민심은 부글부글 끓었고, 삼엄한 공안 통치에 대한 두려움마저 잊고 거리로 쏟아져나와 "봉쇄 대신 자유를 원한다", "선거권을 요구한다" 등 구호를 외치고 있다.
CNN은 "독재 권력의 세일즈 포인트는 그것이 '절대적'이라는 점으로, 민주적 토론과 타협에 절차의 지연을 건너뛸 수 있다는 것"이라며 "사람들이 불복종과 시위를 통해서만 정부와 진정으로 소통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되는 것은 시 주석에게 위험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CNN은 "현대 민주주의는 실제로는 잘 작동하지 않고, 느리고, 계속해서 의견이 뒤집히고, 해결책을 찾기 위해 비틀거리는 과정에서 온갖 자원을 낭비한다"면서도 "민주주의는 반대 혹은 대립되는 주장에 공간을 허용한다"고 짚었다.
이어 "만약 택시기사들이 원치 않는 참전을 강요받거나, 10대 청년들이 머리 스카프를 벗었다는 이유로 총에 맞거나, 바이러스 때문에 아파트에 갇혀 지내야만 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면 이런 대안들이 중요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dk@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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