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SJ "러 인사들, 푸틴이 전쟁 상황 이해하는지 의문"
(서울=연합뉴스) 황철환 기자 = 지난 9월 말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동부의 전략 요충지인 도네츠크주 리만에서 패색이 짙어진 와중에 최전방으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보안회선을 이용해 현장 지휘관에게 후퇴하지 말고 싸우라고 직접 지시한 것이다.
서방에서 지원받은 화포로 무장한 우크라이나군에 포위돼 풍전등화의 처지였던 러시아군은 이로 인해 퇴로가 막힌 채 일방적 공격을 받다가 결국 10월 초 리만에서 참담하게 패퇴했다.
23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서방 정부 관계자와 러시아 전직 고위 정보당국자들은 푸틴 대통령이 전장의 실제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늦기 전에 후퇴해 병력을 보전해야 한다는 군지휘부의 조언을 묵살하고 직접 병사들에게 전선 사수를 명했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양상은 이번 전쟁 내내 이어지고 있다.
당초 푸틴 대통령은 올해 2월 24일 우크라이나에 대한 '특별군사작전'을 지시할 당시만 해도 단시간에 전쟁을 끝낼 수 있다고 믿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후 10개월째 진행 중인 이번 전쟁은 그와는 180도 반대 양상을 보였다.
러시아군 진주를 환영할 것이라는 푸틴 대통령의 기대와 달리 우크라이나 국민은 결사적으로 저항했고, 러시아군은 부실 그 자체인 민낯을 드러낸 채 연전연패를 이어갔다.
이로 인해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군 지휘관들을 불신하게 됐고, 결국은 군 경험이 없으면서도 직접 전선을 지휘하는 지경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푸틴 대통령은 현지시간으로 매일 오전 7시께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서면 브리핑을 받고 있다.
문제는 전선 지휘관의 보고가 정보기관인 연방보안국(FSB)과 국가안보회의를 거쳐 푸틴 대통령에게 전달되는 데 최소 수일이 걸린다는 점이다. 푸틴 대통령은 보안 우려 때문에 인터넷을 사용하지 않은 지 오래됐다고 한다.
최종 브리핑 내용을 검수하는 사람은 강경 주전파로 분류되는 니콜라이 파트루셰프 국가안보회의 서기다. 우크라이나 전쟁 상황을 그대로 전달하기보다는 유리한 상황만 취사선택하거나 강조해 보고할 가능성이 크다고 여겨지는 이유다.
실제, 개전 이후 푸틴 대통령을 만날 기회가 있었던 러시아 군사전문가나 방산업체 관계자 등은 푸틴 대통령의 언행에 우크라이나 전쟁 상황을 명확히 이해하는지 의문을 느끼게 하는 지점이 있었다고 토로했다.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국내 여론이 생각보다 나쁘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보고하려는 조사기관장이 "지금은 (대통령의) 심기를 상하게 할 필요가 없다"는 이유로 가로막히는 등 푸틴 대통령 주변에 '인의 장막'이 쳐졌다는 정황도 감지된다.
지난달까지 대통령 인권자문위원회 위원이었던 예카테리나 비노쿠로바는 "푸틴 대통령 주변 인사들이 자신을 보호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 정부 당국자들은 러시아 측과 거의 매일같이 접촉하고 있지만, 크렘린궁 내에서 푸틴 대통령에게 직언을 할 수 있는 인사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토로했다.
파트루셰프 서기는 이와 관련한 입장을 묻는 말에 답변하지 않았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대통령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복수의 채널을 통해 정보를 얻고 있다"면서 "그가 왜곡된 정보를 받아보고 있다는 모든 주장은 실제와 부합하지 않는다"며 의혹을 부인했다.
hwangc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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