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야드 상점서 장식·트리 판매…관영 영자지 특집기사도
(서울=연합뉴스) 임화섭 기자 = 올 겨울 사우디아라비아에 이례적으로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나고 있으며 이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개방정책에 따른 것이라고 영국 일간지들이 최근 기사에서 전했다.
가디언과 파이낸셜타임스(FT) 따르면 성탄절 연휴 기간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의 쇼핑몰에서 상점들이 크리스마스 트리를 판매하면서 계절에 맞춘 장식을 해놨다.
방울, 반짝이, 막대사탕, 산타 모자, 가짜 눈도 매대에서 살 수 있으며, 카페에도 트리를 놓은 곳이 있다.
당국이 이를 허용키로 했다고 공식 발표한 것은 아니지만, 최근 분위기로 보아 그래도 괜찮을 것이라고 느끼고 있다는 게 상점 주인들의 설명이다.
사우디아라비아 당국은 이 나라가 이슬람의 발상지라는 점을 매우 강조하며, 이에 따라 다른 종교의 신앙행위를 공개 장소에서 하는 것은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그리스도교 전통에 따른 크리스마스 축제 분위기를 내는 것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법에 저촉될 소지가 크지만, 최근 몇 년에 걸쳐 조금씩 분위기가 완화됐다.
다만 아직 그리스도교 전통에 따른 크리스마스 장식이 달린 트리가 공공장소에 공공연하게 전시되지는 않고 있다.
미국 국무부가 올해 6월 발간한 2021년 국제 종교 자유 보고서의 사우디아라비아 편에 따르면 사우디의 인구(2021년 연앙기준)는 3천480만 명이며, 보스턴대의 2020년 세계 종교 데이터베이스(WRD)에 따르면 이 중 약 6%인 210만 명이 그리스도교인으로 추산된다. 사우디 거주 그리스도교인들 거의 모두가 사우디인이 아닌 외국 국적자다. 사우디 전체 인구 중 외국인 비율은 2019년 유엔 추산 38.3%다.
지난 24일(현지시간) 가디언 인터넷판은 리야드에 거주하는 레바논 시민 알리아 오바이디의 말을 빌어 올들어 변한 분위기를 전했다.
오바이디는 "해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리야드의 시장으로 가서 인도 출신 상인을 불러서 귓속말로 주문을 했고, 그러면 그 상인이 뒷방에서 골판지 박스를 가져온 후에 남의 눈에 띄지 않게 돈을 받았다"며 올해는 크리스마스 장식을 구입하기 위해 이렇게 할 필요가 없었다고 말했다.
리야드 주민 파디 알-샤트리는 "가정집에도 트리가 있고, 사우디(인들 가정) 집에도 있다"며 "앞으로 몇 년 지나면 광장에서 트리를 볼 수도 있겠다"고 말했다.
FT 인터넷판은 25일 사우디아라비아 관영 영자신문 '아랍뉴스'가 이 신문 사상 최초로 크리스마스 특집판을 냈다고 전했다.
아랍뉴스는 "사우디인들이 예전보다 훨씬 더 크리스마스 기분을 느끼고 있다"고 보도하면서 영미권의 크리스마스 풍습에 따라 칠면조 요리를 주문할 수 있는 식품점을 독자들에게 소개하기도 했다.
아랍뉴스는 25일 영문 홈페이지에 "사우디아라비아에 사는 그리스도교인들이 종교적 관용의 새 계절에 크리스마스 명절을 쇠고 있다(observe Christmas)"는 제목의 영문 기사를 실었다. 다음날에는 아랍인 스타들이 크리스마스를 즐기는 모습을 전하는 기사를 싣기도 했다.
FT는 크리스마스 분위기 허용한 것이 사우디의 실권자인 무함마드 왕세자의 개혁 정책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아랍뉴스의 특집기사 역시 사우디가 보다 관용적인 국가가 되어 가고 있다고 보여 주려는 목적이라고 관측했다.
limhwasop@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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