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부장적" 비판하며 그림 떼자 "역사 반영한 그림일뿐" 역풍
(서울=연합뉴스) 윤종석 기자 = 네덜란드의 유서 깊은 대학인 레이던대학에서 교내 회의실에 걸린 그림 한 장을 두고 논란이 거세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2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1970년대에 네덜란드 화가 레인 돌(90)이 그림 이 작품은 이 대학의 옛 이사회 구성원들이 테이블에 모여 앉아 시가를 피우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그런데 일부 학생과 교수들이 수년 전부터 그림 속 장면에 문제를 제기하며 회의실에서 그림을 떼어내자는 주장을 펼쳤다.
나이 많은 남자들만 한데 모여 자욱하게 연기를 뿜어대며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시대에 뒤떨어진 가부장적인 느낌을 주는 데다 흡연을 미화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급기야 지난달 11일 보다 못한 회의장 이용자들이 이 그림을 벽에서 떼어내고는 보이지 않게 돌려세워 놓았다.
로스쿨 교수인 요아너 판데르뢴은 그림을 떼어내는 장면을 찍어 트위터에 올리면서 "오늘 즉각적인 조치가 취해졌다"고 적었다.
일부 다른 교수들도 이를 리트윗하며 공감을 표시했다.
하지만 바로 역풍이 불었다.
그림은 그림일 뿐이고 시대상과 그 역사를 반영할 뿐인데 지금 기준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배척하는 것이 옳으냐는 것이다.
이 대학 출신으로 부처 장관을 역임한 위리 로센트할은 "부끄럽다"라며 "이른바 지적인 교수라는 사람들이 어리석은 짓을 벌였다"고 비난했다.
그림을 거부하는 것은 역사를 부인하는 것이라는 지적도 잇따랐다.
자신의 작품이 홀대받은 소식을 들은 레인 돌은 "어리석다. 그리고 슬프다"라고 말했다.
대학 측은 처음에는 대변인을 통해 "그림은 더이상 의미가 없다. 일부 구성원들에 불편감만 줬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내 아네트여 오토 학장이 나서 "별도 위원회를 구성해 이 그림을 어떻게 해야 할지 면밀한 검토를 하겠다"고 밝히며 수습에 나섰다.
그러면서 일단 그림은 위원회의 결론이 나오기 전까지는 원래 위치에 다시 걸어 놓기로 했다.
오토 학장은 "그림과 등장인물들은 모두 훌륭하지만, 모든 이가 이 작품에 공감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며 그림에 배경 설명을 달아주는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 그림의 운명이 걸린 위원회의 권고는 내년 1분기에 나올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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