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파 베네딕토 16세-개혁파 프란치스코, 공존 둘러싼 엇갈린 시각
(바티칸·부에노스아이레스=연합뉴스) 박수현 김선정 통신원 = '두 교황'이라는 기묘한 공존 체제를 이어간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과 프란치스코 현 교황의 실제 관계는 어땠을까.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이 95세로 선종한 것을 계기로 그와 프란치스코 현 교황의 그간 관계에 대한 상반된 평가가 나와 눈길을 끈다.
아르헨티나 현지 매체 암비토는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두 교황의 어려운 공존'이라는 기사를 통해 '두 교황'이 불편한 공존 관계를 이어갔다고 분석했다.
베네딕토 16세는 즉위 이후 8년 만인 2013년 2월 건강 쇠약을 이유로 스스로 교황직에서 물러났다.
그는 사임 이후 모국인 독일로 돌아가지 않고 바티칸시국 내 한 수도원에서 지냈다.
게다가 스스로 '명예 교황'이라는 호칭을 부여해 교황 시절 이름을 그대로 쓰고 교황의 전통적인 흰색 수단을 계속 착용했다.
가톨릭 최고 지도자인 교황 2명이 바티칸에서 공존하는 '두 교황'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 이야기는 2019년 영화로 제작될 정도로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이 매체는 반목설의 근거로 베네딕토 16세가 사임 뒤 '세상으로부터 숨어 지내겠다"고 맹세한 것과는 달리 사제의 성추행과 같은 민감한 문제에 개입하고 기혼 남성에 대한 사제 서품 허용 여부를 놓고 공개적으로 이견을 보였다는 점을 들었다.
또한 천주교 내부의 극보수파가 베네딕토 16세를 프란치스코 교황 면전에서 신학적 정통성의 상징으로 만들었고, 프란치스코 교황을 비난했다고 했다.
독일 출신으로 본명이 요제프 라칭거인 베네딕토 16세는 교리와 신학 또는 사회학적 이슈에서 보수·전통적 입장을 견지해온 인물이다.
교회가 시대의 흐름을 수용하고 신자들을 중심으로 변해야 한다는 프란치스코 현 교황과는 지향점 자체가 정반대다.
베네딕토 16세는 2020년 1월 로버트 사라 추기경이 집필한 '마음 깊은 곳에서: 사제, 독신주의 그리고 천주교의 위기'에 공저자로 이름을 올린 사실이 알려져 논란의 중심에 섰다.
베네딕토 16세는 프랑스에서 출간된 이 책에서 사제독신제 전통을 고수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이는 남미 아마존 등 사제가 절대 부족한 일부 지역에 한해 기혼 남성도 사제로 임명하는 방안에 적극적인 입장을 피력해온 프란치스코 교황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모양새로 비쳐 가톨릭계에 큰 파장을 낳았다.
이에 반해 이탈리아 일간 '코리에레 델라 세라'는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과 프란치스코 현 교황이 서로를 의지하며 평화롭게 공존했다고 진단했다.
이 매체는 베네딕토 16세가 교황직에서 사임한 이후 남긴 30여 개의 강론과 서한, 전기 작가 인터뷰 등은 모두 프란치스코 교황의 동의를 받은 것이었다고 전했다.
각 교황을 지지하는 세력들의 논쟁으로 인해 '두 교황'의 관계가 불편하게 비쳤을지는 몰라도 당사자들은 서로를 의지하고 존중해왔다는 것이 이 매체의 진단이다.
실제로 베네딕토 16세는 진보적 성향의 후임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끄는 개혁 작업을 좌초시키려 한다는 비난에 대해 "프란치스코 교황과의 우정은 지속되고 있고 심지어 깊어졌다"고 반박한 바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2013년 이후 여러 차례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을 방문하며 그와의 연대와 지지를 보여줬다.
'코리에레 델라 세라'는 베네딕토 16세가 선종 전 마지막으로 남긴 말처럼 예수님의 사랑 안에서 두 교황이 현명한 동맹 관계를 유지했다며 이는 가톨릭 내 두 세력 간의 긴장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사임하는 교황의 역할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기에 불필요한 오해를 유발한 측면이 있다며 지금부터라도 규정을 확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탈리아 자유종교 위원회 수장인 프란체스코 마르지오타 브롤리오 역사가는 "앞으로 건강상 문제로 사임하는 교황이 있다면, 사임 후 '명예 교황'으로서 무슨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정확하게 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이제부터라도 은퇴하는 교황은 교황의 휘장과 바티칸에 남는 것을 포기해야 하는 것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celina@yna.co.kr, sunniek8@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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