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상' 놀림 받던 이동시스템…타보니 지하고속도로 같은 느낌
아직은 자율 아닌 수동주행…"별것 없네" vs "놀이기구 탄 기분"
(라스베이거스=연합뉴스) 김보경 기자 = "테슬라가 라스베이거스에 지하철을 만들었다고 보면 돼요. 올해 CES는 규모가 커서 루프도 매우 바빠질 예정이에요."
세계 최대 가전·IT 전시회 'CES 2023' 개막을 이틀 앞둔 3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컨벤션센터(LVCC)에서 만난 루프 안내원 베키(32)는 이렇게 말했다.
루프(Loop)는 테슬라의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가 미국의 도심 교통 체증을 완화하겠다고 선보인 이동 시스템이다.
지하터널을 파 자율주행차로 움직이는 이 시스템은 2013년 머스크가 처음 언급했을 때만 해도 '망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머스크가 세운 보링컴퍼니는 지난해 CES 주요 행사가 열리는 LVCC 지하에 길이 2.7㎞, 깊이 12m의 터널을 뚫어 '베이거스 루프'를 운영했고, CES 관람객 수만 명이 이를 이용했다. 다만 허가 문제로 자율주행이 아닌 기사가 테슬라 차량을 운전하는 방식이 적용됐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CES 관람객의 이동을 도울 루프를 이날 직접 타봤다.
이동 구간은 삼성과 SK 등이 부스를 차린 센트럴홀에서 HD현대[267250](현대중공업그룹), 현대모비스[012330] 등 모빌리티 기업이 모여있는 웨스트홀까지였다. 1.3㎞가량의 거리로, 걸으면 15분가량이 소요된다.
센트럴홀 지하에 마련된 루프 센트럴역에 내려가니 테슬라 모델Y가 3대 정차돼 있었다. 하얀색의 모델X 1대도 눈에 띄었다.
노란색 티셔츠를 입은 남성 안내원은 승객의 목적지와 인원수를 확인한 후 차량을 배정했다. CES 출입증이 있으면 비용은 무료다.
머스크는 완전 자율주행차용 터널로 루프를 구상했지만 베이거스 루프는 올해도 기사가 직접 운전하는 방식이었다.
기자가 탑승하자 곧 동그란 모양의 지하 터널이 등장했다.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만한 너비였다.
지하 터널은 폭약을 사용하는 재래식 굴착과 달리 회전식 원형 절삭기로 땅을 파쇄해 만들어졌는데 이 때문에 고리와 같은 모양을 띠게 됐고, 루프라는 이름도 붙여졌다.
모델Y가 형광 조명이 비추는 터널을 1분 남짓 달리자 목적지인 웨스트홀이 있는 웨스트 스테이션이 곧 눈에 들어왔다. 속도는 시속 60km 안팎이었다.
기자가 "속도가 좀 느리다"고 묻자 기사는 "터널 길이가 짧아서 그렇다. 길이가 길면 속도가 빨라진다"고 답했다.
직접 타보니 자율주행이 아니어서 그런지 지하철보다 지하 고속도로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같이 탑승한 사람들의 반응도 '별거 없다'와 '놀이기구를 탄 거 같다'로 극명히 갈렸다.
현지 기업 관계자인 마이클 김씨는 "좁은 터널을 테슬라 전기차를 타고 지나간 것과 뭐가 다르냐. 속도도 느리다"고 했다.
반면 제이라고 이름을 밝힌 여성 관람객은 "시시각각 변하는 형광 조명 때문인지 재밌었다. 특별할 건 없지만 머스크가 그리는 미래 이동 수단을 앞서 체험했다고 생각한다"고 나름 의미를 뒀다.
루프는 지난해 LVCC 3개홀(사우스홀·센트럴홀·웨스트홀)을 잇는 3개 역만 운영됐지만, 올해는 리조트 월드역과 LVCC 리비에라역이 추가됐다. 운행 거리도 2.7㎞에서 4.7㎞로 연장됐다.
또 올해는 코로나 방역 완화로 기업들의 CES 참가 규모가 커지면서 테슬라 차량 100여대가 루프 운행에 투입될 예정이다. 작년에는 60대가량이 참여했다.
머스크는 도심용 루프와 달리 장거리 이동을 위한 하이퍼루프 시스템도 개발 중이다.
하이퍼루프는 터널을 진공으로 만들어 공기 저항을 없앤 뒤 자기장을 이용해 승객이 탄 캡슐을 실어나르는 시스템이다. 이론적으로 워싱턴에서 뉴욕까지 29분 만에 갈 수 있는 시속 1천200km의 속도가 가능하지만 아직은 상용화가 요원한 상태다.
라스베이거스 당국은 향후 도심 지하 48㎞ 정도를 51개 역의 베이거스 루프로 연결할 계획이다.
vivi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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