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블로거 등 격앙…푸틴은 여전히 비판에서 '안전지대'
(서울=연합뉴스) 전명훈 기자 = 우크라이나군에 허를 찔려 한꺼번에 100명 가까운 장병의 목숨을 잃어버린 러시아에서 당국의 전쟁 수행 능력을 노골적으로 비판하는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미국 CNN방송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동부 친러시아 괴뢰정권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 지도부 출신 파벨 구바레프는 징집병이 한 건물에서 몰살당한 데 대해 "전쟁 초기에나 저지르던 실수"라며 "(군 수뇌부의) 과실 범죄"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런 실수는 전쟁 초기에 저지르던 것이다. 설령 신병들이 잘못된 것을 몰랐다 하더라도 당국은 알았어야 한다. 아무도 처벌받지 않는다면 더 나빠지기만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군의 발표를 종합하면 새해 전날인 작년 12월 31일 도네츠크주 마키이우카의 신병 임시숙소가 우크라이나의 고속기동포병로켓시스템(HIMARS·하이마스) 공격을 받았다. 러시아군은 장병 89명이 숨졌다고 밝혔고 우크라이나군은 사망자 수가 400명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러시아 국방부는 "이 비극은 장병들이 휴대전화 금지 수칙을 어기고 상대방 무기 사거리 안에서 전원을 켜고 대량으로 사용한 것이 원인"이라고도 밝혔다.
이와 관련해 안드레이 메드베데프 모스크바 지역의회 부의장은 텔레그램에서 사건에 대해 지휘관이 아니라 일선 병사들 탓을 할 줄 알았다면서 "병사를 한 곳에 몰아 놓은 것은 지휘관"이라고 수뇌부를 비판했다.
그는 "문제에 대해 침묵한 사람들, 사망한 병사들에게 탓을 돌리려 한 사람들의 이름을, 역사는 분명히 기록해둘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뉴욕타임스(NYT)는 러시아의 군사 관련 블로거들이 이런 비판을 주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에서 반정부 언론·정치인이 탄압당하거나 해외로 추방당하는 사이 블로거들이 강력한 비판세력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직접 겨냥하지는 않고 있다고 NYT는 덧붙였다.
러시아의 한 군사블로거는 푸틴 대통령을 겨냥 "블라디미르 블라디미로비치! 우리는 나라를 사랑한다. 러시아를 워낙 사랑해서 당신의 측근 중 특정 인물은 싫어한다"고 말했다. 블라디미로비치는 푸틴 대통령의 부칭(父稱)이다. 푸틴 대통령이 아닌 측근을 에둘러 비판한 셈이다.
러시아 국영TV는 여전히 크렘린궁에 대한 비판을 제대로 보도하지 않고 있다.
이번 공격으로 사망한 징집병들이 다수 배출된 러시아 중부 도시 사마라, 톨리야티, 시즈란, 노보쿠이비솁스크 등에서 추모 행사가 열렸는데, 국영방송들은 이 행사를 아예 보도하지 않거나, 책임의 화살을 서방 쪽으로 돌리는 발언을 주로 보도했다.
NYT, CNN 등에 따르면 사마라 군 장성의 부인인 예카테리나 콜로토브키나 군인권재단 이사장은 추모 행사에 참석해 당국의 정치선전 언어를 되풀이했다.
그는 "우리를 파괴하겠다면서 서방 전체가 규합했다"며 "절대 용서하지 않는다. 승리는 우리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 관련 전문가인 루슬란 레비에프는 NYT에 "국방부가 빠르게 성명을 내고 사망자 추산치를 발표하는 것을 보면 정부가 이 내용을 통제해 사회적 비판으로 확산하지 못하도록 하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모두가 최고위층의 반응을 촉구하고 있다. 일부는 결론을, 나아가 처벌을 바라기도 한다. 그러나 그럴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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