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대간 실시간 정보공유 등 혁신 앞세워 '네트워크 중심전' 구현
"죽창·화염병 대신 3D 프린터와 드론, 앱이 저항수단 됐다"
(서울=연합뉴스) 황철환 기자 = 미국이 수십년간 추진해 온 '미래보병체계' 구축 사업의 최종 결과물이 어떤 모습일지를 러시아와 맞서 싸우는 우크라이나군이 미리 보여주고 있다고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비록 염가형이라지만 각 부대·병사 간 정보 공유를 통해 정보우위를 추구한다는 '네트워크 중심전'(NCW·Network-centric Warfare)을 현실화했다는 것이다.
작년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특별군사작전'을 선언했을 당시부터 현재까지 우크라이나군은 객관적인 전력에서 러시아군보다 열세에 놓여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우크라이나군은 정면승부 대신 기동력과 정보우위를 앞세워 상대를 기습하거나 국지적으로 포위·격멸하는 전술을 택했다.
이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이 위성 통신이다.
개전 초 일론 머스크의 우주기업 스페이스X는 우크라이나에 위성 인터넷 '스타링크' 단말기 수천 개를 제공했는데, 우크라이나군은 부대별로 최소 한 대의 단말기를 보급해 정보를 공유할 수 있도록 했다.
특히, '델타'로 불리는 전장정보 지원 체계를 개발해 드론(무인기) 정찰 결과와 러시아군 동향과 관련한 점령지 주민 제보 등을 일선 지휘관이 실시간으로 받아보고 최적의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했다.
우크라이나군의 군사기술개발 담당자인 로만 페리모우는 "이것이 이른바 '연결된 전쟁'(connected war)이고, 실상황에서의 경험이 있는 우크라이나군은 이 분야에서 가장 앞서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비교적 평범한 군사 작전에도 약 500대의 드론을 띄울 수 있다"면서 "이런 건 과거엔 볼 수 없었던 모습"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힘입어 우크라이나군 병사들은 더 신속하고 조직적으로 움직이면서 러시아군의 취약점을 정확히 타격할 수 있었고, 상대적으로 경직된 지휘체계를 지닌 러시아군은 병력과 화력에서 앞서면서도 오히려 우크라이나군에 포위돼 연전연패하는 수모를 겪었다.
이런 성과를 낸 데는 우크라이나 민간 전문가들의 자발적 기여가 큰 역할을 했다.
WSJ은 "최신 기술에 능한 우크라이나인들이 디지털 시대에 맞게 게릴라전 기술을 업데이트했다"면서 "과거의 저항 수단은 죽창이나 화염병이었지만, 우크라이나에선 모바일앱과 3D 프린터, 상용 드론이 무기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예컨대 일부 자원봉사자들은 별도의 공정 없이 상용 드론에 장착해 수류탄이나 폭발물을 원하는 지점에 떨어뜨릴 수 있는 부품을 3D 프린터로 제작해 보급하고 있다. 이 부품의 생산단가는 10∼15 달러(1만2천∼1만9천원)에 불과하다.
기업 재무관리 등에 쓰이는 프로그램을 개조해 우크라이나 국제의용군에 합류한 외국인 병사 등의 급여와 일선 부대의 군수물자 관리를 자동화하는 시도가 이뤄지고, 기관총 등으로 무장한 무인전기차량 개발을 추진하는 기업 등도 등장했다.
미하일로 페로도우 우크라이나 디지털 전환 장관은 지난주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우리는 10개월 만에 기술적 도약을 이뤄냈다"고 자평했다.
WSJ은 "우크라이나가 혁신에 성공한 요인 중 하나는 군과 민간 기술기업이 개발하는 군사용 신기술이 서로 달랐다는 점"이라면서 "이건 미 국방부 지원사업보다는 실리콘 밸리의 '차고(garage) 창업'과 비슷한 아래로부터의 접근"이라고 말했다.
이런 우크라이나의 성과를 접한 서방 군사 전문가들 사이에선 자성의 목소리도 나온다.
미 특수부대 출신 기술자로 미군 병사들의 기술훈련을 맡아 온 브래드 헐시는 "우리는 계약서조차 충분히 빨리 작성하지 못한다"면서 미 국방부는 조달 절차에만 1년이 넘게 걸린다고 말했다.
2014년부터 미군과 협력해 우크라이나의 국방개혁을 도와 온 영국군 퇴역 장성 그렌 그랜트는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혁신을 해야 한다는 것이고, 우리는 그렇지 못했다"면서 관료화된 서방 군대는 신기술을 신속히 적용하기에는 "너무 느리고 무겁다"고 비판했다.
hwangch@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