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첫번째 임기 당시 개혁 추진하다 총파업 직면
노동계 일제히 반발하며 파업 예고…반대여론, 여소야대 의회도 난관
(파리=연합뉴스) 현혜란 특파원 = 프랑스 정부가 10일(현지시간) 대중이 기피하는 연금 개혁안을 공개하면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다시 한번 시험대에 올랐다.
마크롱 대통령은 첫 번째 임기에서 직종별로 42개에 달하는 복잡한 연금 제도의 단일화를 추진하다 2019년 12월 총파업에 불을 지폈고, 그 여파로 파리 일대 대중교통이 사실상 마비됐다.
1995년 이후 가장 강력했다는 평가를 받는 파업에도 마크롱 대통령은 연금 개혁을 밀어붙이려 했으나, 2020년 코로나19 대유행이 터지면서 모든 논의를 중단했다.
그러다 2022년 4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마크롱 대통령은 재선에 도전하면서 연금 수령 시점을 늦출 수 있도록 정년을 62세에서 65세로 연장하겠다는 카드를 다시 들고나왔다.
마크롱 대통령은 세금을 인상하지 않고, 또 수령액을 깎지 않으면서도 수지 균형이 맞는 연금 제도를 유지하려면 개혁을 피할 수 없다고 설파해왔다.
이날 연금 개혁안을 발표한 엘리자베트 보른 총리는 "연금 제도를 바꾸는 것이 국민을 두렵게 만든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면서도 "지금 제도를 손보지 않으면 대규모 증세, 연금 수령액 감소로 이어져 우리의 연금 제도를 위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프랑스 연금계획위원회(COR)는 지난해 9월 발간한 보고서에서 향후 10년간 퇴직자 대비 근로자 수가 줄어들어 연금 제도가 적자로 돌아설 것으로 예측한 바 있다.
위원회는 연금 제도에 변화가 없다면 2022∼2032년 국내총생산(GDP)의 0.5∼0.8%, 약 100억유로(약 13조원)에 해당하는 적자를 매년 기록한다고 전망했다.
이러한 배경 속에 마크롱 대통령은 올해 신년사에서도 부채에 의존한 채 연금 제도를 운용할 수 없다며 "우리는 더 오래 일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마크롱 대통령이 연금 개혁을 공약으로 내걸고 연임에 성공한 만큼 그에게 개혁을 완수할 정당성이 주어졌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날 발표된 연금 개혁안은 정년을 65세에서 64세로 낮추는 등 당초 공약에 비해 다소 후퇴한 내용을 담았지만 대중의 반응은 싸늘한 편이다.
여론조사기관 오독사가 샬렁주와 BFM 방송 의뢰로 이달 4∼5일 성인 1천8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74%가 법정 퇴직 연령을 62세로 유지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와 달리 63세 퇴직에 찬성한다는 응답률은 26%, 64세에 퇴직에 찬성한다는 응답률은 16%, 65세 퇴직에 찬성한다는 응답은 응답률은 13%로 낮은 편이었다.
이러한 대중의 불만과 함께 프랑스 주요 노동단체가 일제히 정년 연장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표명하며 파업을 예고한 것도 마크롱 대통령에게 부담일 수밖에 없다.
정년 연장은 노동 개혁에 늘 반대해왔던 강경한 노조부터 개혁에 비교적 친화적이었던 온화한 노조까지 거부하고 있어, 이들 중 일부라도 포용하는 게 난망해 보인다.
여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하지 못한 하원에서 야당을 설득하는 것 또한 마크롱 대통령이 연금 개혁을 실현하기 위해서 넘어야 할 산 중 하나다.
여당 르네상스를 비롯한 범여권은 하원 전체 의석 577석 중 250석을 확보한 제1당이지만, 과반(289석)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에 단독 입법이 쉽지 않다.
헌법 특별 조항을 발동하면 하원 표결 없이도 법안 처리가 가능하지만, 그럴 경우 안 그래도 성난 대중을 자극해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기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정부 입장에서는 다행히도 중도 우파 성향의 공화당이 연금 개혁에 호의적인 반응을 보여왔고, 일부 조항을 수정한다는 조건으로 법안을 지지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원 의석 150석으로 제1야당 자리를 꿰찬 좌파 연합 '뉘프'를 이끄는 극좌 성향의 굴복하지않는프랑스는 은퇴 연령을 60세로 낮추고 세금을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88석으로 뉘프 다음으로 가장 많은 의석을 확보한 극우 성향의 국민연합도 정부가 추진하는 연금 개혁안은 청년층에 피해를 준다며 반드시 저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run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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