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문건 분석결과 학술지 사이언스 게재
"경영진 위선…특권적 정보 접근하며 대중에 거짓말"
(서울=연합뉴스) 유한주 기자 = 미국의 에너지 대기업 엑손모빌이 1970년대부터 이미 화석연료 사용에 따른 기후변화 위험을 알았으나 자사 이익을 위해 이를 감추고 부정해왔다는 분석이 나왔다.
12일(현지시간) 영국 BBC 방송 등에 따르면 미국 하버드 대학 등 소속 연구진은 과학 저널 사이언스에 이 같은 내용의 연구 결과를 게재했다.
연구팀은 엑손모빌 측 과학자가 1977∼2003년 작성한 내부 문서를 분석한 결과 이들은 화석연료가 기후 변화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화석연료 연소로 인해 지구 기온이 10년에 섭씨 0.2도씩 오를 것으로 예측했다고 밝혔다.
엑손모빌은 지표 온도의 상승폭을 산업화 전과 비교할 때 2도 안으로 억제하기 위해 탄소배출을 어떻게 줄여야 하는지에 대한 추정치도 당시 문건에 보유하고 있던 것으로 드러났다.
상승폭 2도 억제는 세계 각국이 갖은 진통 끝에 2015년 파리 기후변화협약을 통해 목표 가운데 하나로 합의한 내용이다.
연구진은 "엑손모빌이 내놓은 예측은 정부나 학계에서 내놓는 모델과 일치했으며 또 그만큼 능숙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들의 연구가 세계 최고로 꼽히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 과학자가 제시하는 것만큼 정확한 수준이었다고도 평가했다.
문제는 엑손모빌이 여태껏 화석연료와 기후 변화 간 연관성을 공개적으로 부인해왔다는 점이다.
엑손모빌 전 최고경영자(CEO)였던 렉스 틸러슨은 2013년 "화석연료를 태우는 것이 기후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는 불확실하다"고 공언했다.
1999년 엑손모빌 CEO였던 리 레이먼드도 "기후 전망은 아직 완전히 입증되지 않은 모델이나 단순한 추측에 기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주장했다.
엑손모빌은 공식적으로 이같이 일관된 항변이 지속되는 동안 학계, 정부, 유엔이 경고하는 화석연료을 팔아 계속 막대한 이익을 내왔다.
연구의 공동저자인 하버드대 과학사학자 나오미 오레스케스는 "이번 발견으로 엑손모빌 경영진의 위선이 분명히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오레스케스는 "그들은 자사 과학자가 매우 높은 수준의 작업을 수행했다는 걸 알고 있었고, 오직 자신들만 그 특권적 정보에 접근하면서 대중에는 기후 모델이 허풍이라고 주장해왔다"고 비판했다.
그렇지 않아도 기후위기를 심화한 장본인 가운데 하나로 비판받던 엑손모빌에는 이번 연구가 더 큰 압박이 될 수 있다.
현재 미국에서는 엑손모빌이 자사 이익을 위해 거짓정보를 퍼뜨렸다며 미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hanju@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