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조지아 통해 서방 물자 우회수입…국경에 트럭 행렬"

입력 2023-01-14 19:36  

"러시아, 조지아 통해 서방 물자 우회수입…국경에 트럭 행렬"
NYT "러, 서방 제재 불구 전쟁 이전 수준으로 수입량 회복"


(서울=연합뉴스) 임화섭 기자 = 러시아가 자국에 대한 유럽연합(EU)의 제재를 회피하기 위해 조지아를 거치는 육로로 서방 물자를 수입하고 있다고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가 1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NYT는 조지아의 카즈베기 검문소에서 송고한 현장 취재 기사를 통해 러시아로 가는 국경지대 고속도로의 상황을 소개했다.
보도에 따르면 화물차들이 코카서스 산맥을 넘어 러시아로 화물을 운송하기 위해 구불구불 길게 뻗은 고속도로에 엄청나게 긴 줄을 서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행렬은 날이 갈수록 길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심하게 밀릴 때는 행렬이 국경에서 170km 떨어진 조지아 수도 트빌리시까지 이어질 때도 있다.
트럭 운전자들은 우회도로에 있는 특별 주차장에서 대기하면서 휴식을 취하거나 잠을 자고, 국경 검문소 근처에 오면 번호표를 받고 순서를 기다린다.
작년 12월 화물차 대기 행렬 길이는 1년 전인 재작년 12월에 비해 2배 이상으로 늘었다고 러시아 연방 관세청은 NYT에 설명했다.
차에 실린 화물은 자동차 부품, 공업 원료, 화학 물질, 티백 생산용 거름종이 등 매우 다양하다.
화물은 대부분 서방산 상품들로 EU 회원국인 튀르키예에서 트럭에 실려 조지아를 거쳐 러시아의 마을들과 도시들에 도착한다.
작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후 러시아와 유럽 사이의 교역로 상당수가 예고 없이 끊겼지만, 러시아 경제는 재빠르게 적응해 서방산 상품을 수입할 수 있는 대체 경로를 찾아냈다고 NYT는 지적했다.
옛 소련의 일원이자 2008년 러시아에 맞서 전쟁을 벌인 적도 있는 조지아가 러시아와 외부 세계를 연결하는 편리한 물류 통로가 된 것이다.
작은 운송업체를 경영하는 조지아인 트럭 운전기사 무르만 나카시제(48) 씨는 NYT에 "전쟁으로 많은 이들이 고통을 겪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이익을 얻는 사람들도 있다"며 "우리 경제엔 (전쟁이)좋다"고 말했다.
보유한 트럭 4대로 튀르키예에서 러시아로 화물을 실어나르는 나카시제 씨의 사업체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로 사업 더욱 번창하고 있다. 운송 운임 역시 갈수록 오르고 있다.
검문소 통과 순서를 기다리면서 트럭을 수리 중이던 운전기사 알릭 오가네시안(60)은 NYT에 "여기로 온갖 사람들이 온다. 벨라루스 사람, 카자흐스탄 사람, 우즈베키스탄 사람, 이런 사람들은 전에는 온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어떤 경우에는 순서를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길어지는 탓에 농수산물이나 식료품 등이 상해버리기도 한다고 전했다.
조지아 최대의 투자은행인 TBC 캐피털에 따르면 2022년 상반기에 튀르키예와 러시아 사이의 화물 운송은 부피 기준으로 3배로 늘었으며, 이 중 많은 양이 조지아의 도로를 통과해 운송됐다.
터키발 러시아행 화물트럭 중에서는 조지아가 아니라 아르메니아나 아제르바이잔을 거치는 경로를 택하는 경우도 있다. 조지아-러시아 국경 검문소에 늘어선 화물트럭 줄이 워낙 길어, 오히려 돌아서 가는 게 나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방식의 우회 수입을 통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 후 경제 제재로 받은 타격을 상당히 완화할 수 있었다.
일부 상품이 품귀 상태이고 많은 서방 기업들이 러시아에서 운영을 중단했음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정부는 지난해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 3% 정도였다고 밝혔다. 서방의 제재가 러시아의 경제에 당초 예상만큼 큰 타격을 주지 못했다는 얘기다.
NYT는 러시아 관세청장의 국영TV 인터뷰를 인용, 작년 5월 이래 러시아에는 원래 상표권자들의 동의 없이 별도 채널로 수입되는 이른바 '병행수입 절차'를 통해 200억 달러(24조8천억 원) 규모의 상품이 들어왔다고 전했다. 이 중 상당 부분은 자동차와 공장 기계가 차지한다.
NYT는 러시아 중앙은행 자료를 근거로 "전체적으로 봤을 때 2022년 말에는 러시아의 수입 규모가 전쟁이 시작되기 전 수준을 거의 회복한 상태였다"며 관세 징수액도 늘었다고 덧붙였다.
NYT는 조지아를 통과해 러시아로 가는 유럽발 화물 중 얼마만큼이 EU 제재 대상인지 파악하기가 불가능하다며, EU의 제재 정책에 허점이 있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조지아 정부는 서방 측 제재 조치를 엄격히 시행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재화의 유통에 있어 대체로 방해가 없다고 야당 의원들은 비판하고 있다.
limhwasop@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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