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계환 기자 = 미국이 '새로운 석유'로 불리는 반도체 공급망 확보를 위해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반도체 생산 능력 확보 의지와 중국의 부상을 막기 위한 견제 심리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반도체 생산의 주도권을 되찾기 위한 미국의 필사적인 노력이 펼쳐지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반도체산업협회(SIA)에 따르면 2020년 이후 반도체 기업들이 발표한 미국 내 투자계획이 40여 건에 이르며 총 투자 규모도 2천억 달러(약 247조3천600억 원)에 달한다. 이로 인해 늘어날 일자리도 4만여 개나 될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막대한 투자는 반도체 산업이 국제적인 경제 경쟁의 승패를 좌우하고 한 국가의 정치적, 기술적, 군사적 우위를 결정할 것이란 조 바이든 정부의 판단에 따른 것이다.
또한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나타난 전 세계적인 반도체 부족 현상이 야기한 피해를 체감하면서 반도체 공급망 확보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기 때문이기도 하다고 WSJ은 설명했다.
앨릭스 파트너스에 따르면 자동차 업계는 지난해 반도체 부족으로 2천100억 달러(약 259조6천20억 원)의 매출 손실을 경험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8월 반도체 산업 및 연구·개발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한 '반도체 산업육성법'(반도체법)을 공포했다.
이를 통해 반도체 생산과 연구에 520억 달러(약 64조2천824억 원)의 지원금을 지급할 예정이다.
반도체는 광범위한 공급망이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단순한 공급망을 가진 원유와 달리 미국이 반도체 관련한 모든 공급망을 독자적으로 구축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첨단 반도체 생산능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미래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는 절박함이 미국 정부와 업계를 움직이게 하고 있다고 WSJ은 분석했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정부 주도의 산업정책보다는 시장이 기능에 따른 자원 분배를 선호해 왔지만, 반도체는 민간과 군에 필수적인 요소인 만큼 원유처럼 예외를 적용해 정부의 강력한 산업정책을 통해서라도 육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반도체 굴기'를 내세운 중국의 부상을 막기 위해 미국 반도체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논리도 한몫하고 있다.
미국은 세계 반도체 생산이 한국과 대만, 중국에 몰려 있는 상태에서 중국이 자체 생산능력 확대 또는 대만 침공을 통해 첨단 반도체 생산에서 우위를 점하면 미국 경제가 위협받을 수 있는 우려를 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중국에 대한 첨단 반도체 설비 수출 규제를 발표한 것도 이런 우려를 반영한 것이다.
미국은 지난 1940년대부터 반도체 개발과 상업화에 나서 반도체 설계와 소프트웨어 도구, 반도체 생산설비 등에서는 아직 우위를 점하고 있다.
하지만 반도체 생산은 한국과 대만 등에 주도권을 넘긴 상황이다.
보스턴 컨설팅 그룹과 SIA에 따르면 전 세계 반도체 생산량에서 미국의 비중은 지난 1990년 37%에 달했으나 2020년에는 12%로 줄어들었다.
반면 중국의 비중은 같은 기간 0%에서 15%로 급격히 증가했다.
일반 반도체는 세계 각지에서 생산되고 있지만, 첨단 반도체 생산은 대만의 TSMC와 한국의 삼성전자, 미국의 인텔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50년간 원유가 어디 묻혀 있는지가 지정학에서 가장 중요했다면 향후 50년은 반도체 공장이 어디에 있는지가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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