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사태에도 기록적 성장·일자리 증가…40년만의 최악 인플레 '역풍'
우크라전쟁·고금리 장기화·정리해고 확산 조짐…경기침체 가능성에 고심
(뉴욕=연합뉴스) 고일환 특파원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절정기 때 취임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팬데믹으로 인한 경제적 타격을 완화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취임 직후인 2021년 3월에는 1조9천억 달러 규모의 코로나 구제법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현금 지원과 실업급여 확대 등 사회안전망 강화를 위한 연방정부의 지출을 대폭 늘리겠다는 내용을 담은 이 법안은 미국 역사상 두 번째로 큰 규모로 기록됐다.
이후 바이든 대통령은 6조 달러 규모인 2022년 회계연도 예산안을 의회에 제출하는 등 공격적인 재정지출 정책을 이어나갔다.
정부의 적극적인 지출과 함께 미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제로금리 정책으로 시장에 돈이 돌면서 미국 경제는 생각지도 못했던 활력을 찾았다.
코로나19 사태가 완전히 마무리되지 않았던 2021년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5.7%로 1984년 이후 최대폭을 기록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자신의 임기 첫해 GDP 수치가 37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성장한 것을 자신의 치적으로 선전해왔다.
당시 그는 성명에서 "20년 만에 처음으로 우리 경제는 중국보다 빠르게 성장했다"며 "이는 우연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미국의 제조업을 재건하고,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바이든 대통령의 정책도 성과를 냈다.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반도체법은 미국 기업의 리쇼어링(생산시설의 본국 복귀)뿐 아니라 외국 기업의 미국 투자를 촉진했다.
컨설팅업체 딜로이트의 추산에 따르면 지난해에만 35만 개의 일자리가 미국으로 다시 돌아왔다.
코로나19 사태 때 일손 부족 현상이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일자리가 늘면서 미국의 실업률은 1960년대 후반 이후 최저수준인 3.5%까지 하락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같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바이든 대통령은 웃을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적극적인 재정정책과 제로금리 정책으로 시장에 풀린 돈이 물가상승이라는 역효과를 불렀기 때문이다.
지난해 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촉발된 글로벌 에너지 위기가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미국의 물가는 40여 년 만에 최대폭으로 오르기도 했다.
특히 미국인들이 가장 민감하게 생각하는 휘발유 가격의 급등은 지난해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바이든 대통령의 최대 고민 중 하나였다.
바이든 대통령이 사우디아라비아의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피살사건과 관련해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접고 사우디를 방문한 것도 원유공급 확대라는 더 시급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바이든 대통령의 고민은 해결되지 않았다.
독립적으로 통화정책을 시행하는 연준이 물가를 잡기 위해 제로금리 정책을 폐기하면서 바이든 대통령은 더욱 복잡한 상황에 몰리게 됐다.
기준금리 상승으로 뛰어오른 물가를 잡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이 과정에서 경기침체가 발생할 경우 역시 국민의 불만과 고통을 확산하는 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 기업들도 고금리로 인한 경기 침체 등 향후 불투명한 경영 환경에 대비하겠다는 목적으로 정보기술(IT) 업체를 중심으로 정리해고가 확산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연준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선 노동시장이 진정돼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자신의 업적으로 내세우는 낮은 실업률은 인플레이션 완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최근 인플레이션이 둔화하고 있다는 경제통계가 이어지면서 연준도 기준금리 상승 폭을 줄이는 등 속도 조절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지만, 변수는 적지 않다.
연준 내 매파(통화 긴축 선호)에서는 상반기에 기준금리를 추가로 1%포인트 이상 올려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코로나19도 여전히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경제의 변수로 꼽힌다. 백신이 보급됐고, 치료법도 개발됐지만 새로운 변이 출연 가능성까지는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의 향방도 취임 2주년을 맞는 바이든 대통령의 경제 정책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미국이 인플레이션을 잡으면서도 노동자들에게 유리한 고용환경을 지속시키는 이상적인 경제 환경을 달성하더라도, 코로나19나 우크라이나 전쟁과 같은 외부요인은 언제든 다시 미국 경제를 위기로 몰아넣을 수 있다는 것이다.
kom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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