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국 "수천명 색출·처벌"…역사적 인연으로 친러 성향 근절안돼
(서울=연합뉴스) 유철종 기자 = 러시아의 침공에 맞서고 있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측에 협력하는 내부 반역자나 스파이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미국 외교 전문매체 포린폴리시(FP)가 1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흔히 '제5열'로 불리는 이들 반역자와 정보원들이 자국 내 주요 기간시설과 군사 목표물에 관한 정보를 넘겨주거나 친러 여론을 퍼트리면서 러시아의 전쟁 수행을 돕고 있어 우크라이나 당국이 이들을 색출해 처벌하는 데 골몰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당국에 따르면 친러 반역자나 협력자들은 정부 기관, 사법부, 의회, 교회 등은 물론 보안 기관 내에서도 나오고 있다.
러시아의 침공이 시작된 지난해 2월부터 우크라이나 보안국(SBU)은 친러 활동을 한 혐의자들을 상대로 약 2천500건의 형사 절차를 진행했고, 600명의 적 정보요원과 스파이를 구금했으며, 4천500건 이상의 국가기관에 대한 사이버 공격을 무력화했다고 밝혔다.
러시아인들에게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 지역의 중요 기간시설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우크라이나 로켓 발사대의 위치를 파악하려 시도한 한 남성은 최근 12년 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우크라이나 상공회의소의 국장과 각료회의 사무국의 부서장은 자국 국방력 정보와 사법 요원들의 개인 정보를 러시아에 전달한 혐의로 키이우에서 체포됐다.
SBU 대변인 아르템 데흐티아렌코는 "불행히도 정부 고위 관리 중에도 적 요원들이 있으며, SBU조차 내부 스파이와 반역자들을 정화하는 일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전했다.
10여 년간 정부 비판 활동을 벌여오다 개전 이후 경찰·정보기관의 반역자 색출 작업에 협력하고 있는 현지 비정부기구 '체스노' 대표 이리나 페도리우는 "그동안 1천 명 이상의 친러 협력자들을 색출했으며, 이 중 47%는 정치인, 27%는 판사였다"고 소개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지난 10일 노골적인 친러시아 성향을 보여 온 우크라이나 의회 의원 4명의 국적을 박탈했다고 밝혔다.
젤렌스키는 "국민의 대표들(의원들)이 우크라이나 국민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우크라이나에 온 살인자들을 섬기겠다는 선택을 한다면, 우리의 조치는 적절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난해 말에는 러시아 정교회와 오래 연계돼 있던 우크라이나 정교회 사제 13명이 국적을 박탈당했다.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에 협력하는 내부 반역자와 정보원들이 대규모로 나오는 것은 양국의 오랜 역사적 인연 때문이다.
제정 러시아 시절 대부분의 지역이 러시아에 속해 있었고, 1922년부터 1991년까지 근 70년간 옛 소련의 일부였던 우크라이나 곳곳에는 러시아의 영향력이 여전히 뿌리 깊게 남아 있다.
특히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 주민들은 전통적으로 러시아어를 사용해왔고 친러 성향이 더 강하다. 이곳에선 지금도 러시아 관영 TV 방송들이 방영되고 있다.
러시아와 깊은 관계를 맺고 살아오면서 러시아에 더 친밀감을 느끼는 많은 우크라이나인이 전쟁 이후에도 친러 활동에 가담하고 있는 것이다.
2014년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난 '마이단 혁명'(친서방 정권교체 혁명),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과 전면적 침공 등으로 다수 우크라이나인의 성향이 '반러 친서방'으로 돌아섰지만, 친러 성향을 고수하는 세력이 완전히 근절되지는 않고 있다는 분석이다.
cjyou@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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