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룸버그 "한국 핵무장 '군불때기'에 미 압박감 커져"

입력 2023-01-18 12:49  

블룸버그 "한국 핵무장 '군불때기'에 미 압박감 커져"
미 전문가, FP 기고에서 "미 정부, 한국 핵무장 용인할수도"


(서울=연합뉴스) 현윤경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주 연초 국방부 업무보고에서 '자체 핵 보유' 가능성을 언급해 파문이 일자 대통령실은 곧바로 실제로 추진할 계획이 없다고 진화에 나섰다.
존 커비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도 지난 12일 브리핑에서 윤 대통령의 발언 관련 질문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했고, 이는 변하지 않았다"고 말해 한반도 비핵화 원칙을 재확인하고 확장억제 강화에 무게를 실었다.
한미 양국 정부는 이 문제가 거론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 듯한 분위기이지만, 이는 급속도로 향상되고 있는 북한의 핵 능력에 대처하는 최선의 방안을 둘러싼 오랜 우방 간의 근본적인 긴장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미 블룸버그 통신이 1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 매체는 그러면서 한국이 오랫동안 금기시 됐던 핵무장 카드를 만지작거림으로써 미국이 느끼는 압박감이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CIA에서 북한 분석관으로 활동한 수 김 전(前) 랜드연구소 안보분석가는 윤 대통령도 핵무장 추진이 한미 동맹에 위기를 불러오고 한국의 민간 핵 프로그램을 위협하는 제재를 초래할 위험 소지가 있음을 인식하고 있을 터이지만, 이런 논의로 미국이 한국에 더 구체적이고, 강화된 안보 보장을 제공하도록 압박을 받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윤 대통령은 미국이 한국의 핵무장에 대해 즉각적으로 검토하리라 기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제하면서도 "그런 구상을 거론하는 것만으로도 점점 위험해지고 있는 역내 안보 상황을 주목하게끔 하고, 현재의 접근법이 한미 모두의 안보에 한계가 있음을 미국이 인식하게끔 하는 효과를 낼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의 핵우산에 의존하고 있는 또 다른 미국의 동맹 일본과는 달리 한국의 여론도 핵무장에 좀 더 열려 있다고 블룸버그는 짚었다. 작년에 실시된 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5.5%가 자생적 핵 프로그램을 지지한다고 답변했는데, 이는 전년에 비해 10%포인트 높은 수치다.
윤 대통령이 지난 주 지적한 것처럼 이미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는데다 핵 물질과 공학기술 노하우를 갖추고 있는 한국은 마음만 먹으면 핵무기를 신속하게 제조할 수 있는 역량도 갖췄다.
마크 피츠패트릭 전 국무부 비확산담당 부차관보는 "한국이 전력을 다한다면 약 2년 안에 핵무기를 생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피츠패트릭 전 부차관보는 그러나 한국은 미국의 완강한 반대라는 큰 장애물과 '선량한' 핵비 확산국이라는 위상에 입을 타격 등으로 인해 핵무장이라는 선택지를 포기해 왔다고 분석했다.
그의 말처럼 핵확산금지조약(NPT) 가입국인 한국이 핵무장을 추진,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는다면 대선 후보 시절부터 '넷제로' 달성 등을 위해 원자력 발전 비중 확대를 강조해 온 윤석열 정부의 에너지 정책에는 즉각적인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블룸버그는 예상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차장 출신인 올리 하이노넨 스팀슨센터 특별연구원은 원자력 발전을 위해서는 우라늄이 필요한데, 대부분의 우라늄 생산국들은 NPT 가입국인 까닭에 원자로를 돌리는 데 필요한 우라늄 확보에 큰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하이노넨 특별연구원은 그러면서 윤 대통령의 핵무장 발언은 미국의 핵 억지력을 관리하는 데 있어 한국의 발언권을 좀 더 키우려는 '압박 전략'에 가깝다고 평가했다.
블룸버그는 해제된 미국의 기밀 문서에서 드러나듯 한국은 1970년대 후반에 핵무장 추진을 고려했다가 미국의 압력으로 포기한 적이 있고, 주변국인 중국, 러시아, 북한이 각각 무기를 증강하고 있는 상황이라 지정학적인 위험이 더 커지고 있다고 현 상황을 바라봤다.
이런 상황에서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확장된 억지력'이면 충분하다고 아무리 주장해도 한국인들은 핵무기가 장착된 북한의 대륙간 탄도미사일이 유사시 미국의 개입을 막을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고 미국 프린스턴대의 물리학자이자 핵정책 전문가인 프랭크 폰 히펠 교수는 진단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가 러시아의 핵무기를 의식해 우크라이나 전쟁에 직접 개입하지 못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한편, 미국 보수성향 싱크탱크 카토 연구소의 더그 밴도우 수석연구원은 17일 포린폴리시(FP) 기고문에서 미국 정부가 한국의 핵무장을 용인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예측을 내놨다.
밴도우 연구원은 북한을 비핵화하려는 미국의 노력은 막다른 길에 다다랐고 북한은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무기를 계속 발전시키고 있다며, 북한이 미국을 선제 타격할 역량은 갖추지 못하더라도 미국의 한국 방어에 대해 보복할 수 있는 능력은 곧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역내 균형의 이같은 변모로 미국과 한국 내부에서는 핵 정책을 둘러싸고 심각한 논의가 촉발됐다면서, 미국이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을지라도, 현실은 결국 한국의 핵보유와 관련해 '정책 후퇴'(a policy retreat)로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북한이 지난해 90차례 이상 탄도미사일 시험을 하면서 한국민의 불안감이 높아지자 윤석열 정부는 연초 자체 핵무장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으며, 미국의 일부 정책 입안자들도 그런 가능성에 대해 열려 있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밴도우 연구원은 지적했다.
그는 이어 "북한은 대륙간 탄도미사일에 핵탄두를 장착해 미국의 도시들을 위험에 빠뜨리려 가열차게 노력하고 있다"며 미국은 한국이 북한의 위협에 처할 경우 핵무기를 포함해 가용할 수 있는 모든 무기를 동원해 한국을 철통같이 방어할 것이라는 약속을 했지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미 본토에 '화염과 분노'를 안길 수 있더라도 그 약속을 과연 지킬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또한 유사시 핵보유국 북한이 미국 본토를 위협할 경우 미국이 한국 방어 약속을 실제로 지킬 수 있을지에 대한 한국의 우려는 일리가 있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소련 해체 직후인 1994년 핵을 포기하는 대가로 미국의 안전보장 약속을 받았던 우크라이나도 작년 러시아의 침공을 받자 핵무기를 그대로 갖고 있었으면 러시아의 침략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한탄했다는 것이다.
그는 결론적으로 북한의 핵무장으로 금기시 되던 한국의 핵보유라는 선택지가 '생각해봄직한'(thinkable) 카드로 부상했다며, 미국으로서는 한국과 대만 등 동맹국의 핵 무장을 허용하는 것을 몇년 전까지는 떠올리기 힘들었지만 이는 북한이 핵보유국이 되기 전까지의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아시아에서 확장된 핵 억지력은 미국민들의 위험을 줄일 것이라면서 "만약 미 정책입안자들이 한국을 위해 모든 위험을 감수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면 이제 '한국의 핵무장'이라는 종전엔 생각할 수 없었던 일을 숙고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ykhyun14@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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