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전쟁에 의문 품던 두 친구…러시아서 미 알래스카로 망명

입력 2023-01-25 06:00  

우크라 전쟁에 의문 품던 두 친구…러시아서 미 알래스카로 망명
예비군 징집 시작에…작은 어선으로 목숨 걸고 베링해 건너
석달여 구금 후에야 보석 석방…"사업하고 싶다"


(런던=연합뉴스) 최윤정 특파원 = 작년 가을 징집을 피해 베링해를 건너 미국 알래스카로 망명한 러시아인 두 명이 석달여 만에 구금에서 풀려나 드디어 자유의 몸이 됐다.
지난해 탈출 소식이 전해지자 러시아는 이들이 1971년생과 1978년생으로 징집 대상이 아니며, 불법 행위 처벌을 피하려고 도망쳤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들은 영국 이코노미스트지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하다가 요주의 인물이 됐으며, 전쟁에 끌려가 목숨을 잃지 않으려고 망명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23일(현지시간) 이코노미스트지에 따르면 시베리아 작은 해안 마을 에그베키노트에 살던 세르게이씨와 막심씨는 작년 9월 26일 녹색 군복을 입은 러시아군이 현관문을 두드리고 다니자 탈출을 결정했다.
10대 때부터 친구인 이들은 정부를 향한 불만을 나누는 사이로, 우크라이나 전쟁이 무의미하고 사악하다고 생각했다.
특히 이 중 트럭 운송회사를 운영하던 세르게이씨는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내다가 한 달 전에 연방보안국(FSB)으로부터 극단주의 혐의로 기소되고 지역 연금 명령을 받은 상태였다.
막심씨도 선택지는 우크라이나에서 죽거나 미국행을 시도하는 것뿐이었다.

이들은 어부인 막심씨가 마련한 작은 배에 식량과 연료를 채우고 9월 29일 300마일(약 480㎞) 떨어진 알래스카 서쪽 외딴 섬 세인트 로렌스로 출발했다.
갖고 있던 루블화는 달러화로 교환이 안 되기 때문에 친구와 친척에게 나눠줬다. 탈출 계획은 멀리 사는 세르게이씨의 딸 한 명에게만 알렸다. 세르게이씨는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국가 선전을 믿는다"고 말했다.
이들은 추코트카 반도 해안을 따라 항해하면서 국경 수비대에 걸리지 않으려고 조심했지만, 경계는 심하지 않은 듯했다.
진짜 위기는 폭풍이었다. 유머를 섞어서 얘기하던 세르게이씨도 침몰 위기를 넘기고 처음 세인트 로렌스 섬을 본 순간을 말할 때는 눈물을 보였다.
이들이 마을에 상륙해서 구글 번역기로 망명하겠다고 밝히자 주민들은 환영하며 피자와 주스를 나눠줬다.
하지만 이민 당국은 다음 날 이들을 앵커리지로 데려가 감옥에 이틀간 둔 뒤 워싱턴주 타코마의 구금센터로 보냈다.
앵커리지에서 댄 설리번 상원의원이 와서 "인내심이 조금 필요하다"고 했는데 결국 다른 수감자 70명과 함께 큰 방에서 석 달 넘게 구금돼 있었다.
이들은 콩과 쌀을 먹고, 러시아어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세르게이씨는 한 달에 두 차례 사서가 새 책을 전해주는 날은 명절 같았다고 말했다.
그러다가 올해 1월 13일 세르게이씨가, 5일 후에는 막심씨가 보석으로 석방됐고, 이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난민을 돌보는 우크라이나인 신부의 도움을 받고 있다.
세르게이씨는 미국인 자원봉사자가 미국 정부의 대우를 사과하면 괜찮다고 답하지만, 조금 더 물어보면 "끔찍하다. 그런 일은 생각도 못 했다"고 털어놨다. 이들은 인터뷰 중 미국은 법이 지켜지는 자유 국가라서 망명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이제 두어달 후면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세르게이씨는 타코마 지역에서 재활용 사업을 구상하고 있고 막심씨는 소박하게 어선을 다시 타고 싶어한다.
merciel@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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