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출신 '에듀테크 창업 1호' 판카즈 태그하이브 대표
[스타트업발언대] "한국 선택한 것은 제 운명이었죠"인도 출신 '에듀테크 창업 1호' 판카즈 태그하이브 대표 / 연합뉴스 (Yonhapnews)
(서울=연합뉴스) 박세진 기자 = "제가 한국에서 제일 좋아하는 거는 속도예요. 국제전화 코드도 '빨리'(82)잖아요. 한국은 모든 게 진짜 빨라요. 에브리싱 이즈 슈퍼 패스트(Everything is super-fast)…"
기술 기반의 교육 솔루션 업체 '태그하이브'를 이끄는 아가르왈 판카즈(40) 대표는 인도인이다.
그는 학교 현장에서 교사와 학생 간 소통을 돕는 양방향 커뮤니케이션 도구를 개발하고 보급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
한국에서 에듀테크 스타트업을 세운 '1호 인도인'으로 알려진 판카즈 대표를 지난 13일 서울 송파대로 테라타워 사무실에서 만나 얘기를 들어봤다.
◇ 삼성맨에서 창업가로…"세상에 좀 더 영향력 미치고파"
인도 콜카타 출신인 판카즈 대표가 한국과 인연을 맺은 통로는 외국인 인재를 발굴하는 삼성전자의 글로벌 장학 프로그램(GSP)이다.
그는 인도공과대(IIT 칸푸르) 4학년 재학 중이던 2004년 GSP 장학생으로 선발돼 서울대에서 전기공학 석사과정을 밟은 뒤 2006년부터 삼성전자 영상사업부에 배치돼 일했다.
"당시 다른 나라로 갈 수도 있었는데, 저는 한국을 택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제 운명이라고 할 만큼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11년간 삼성전자에서 근무하면서 삼성 지원을 받아 미국 하버드대 MBA 과정까지 거쳤다.
판카즈 대표가 창업의 길로 나선 토대가 된 것은 삼성전자 사내 벤처 육성 프로그램인 C랩(LAB)이다.
"삼성전자에 계속 근무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었지만 세상에 좀 더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창업을 통해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습니다."
◇ 사용 환경 단순…"심플 이즈 더 베스트"…
C랩에 지원해 선발된 판카즈 대표가 창업 아이템으로 잡은 것은 교사와 학생 개개인 간의 소통(커뮤니케이션)을 돕는 기능을 핵심으로 하는 솔루션이다.
애초 초중고생용으로 개발했지만 한국에선 현재 초등생, 인도에선 초등 고학년과 중학생이 주로 사용하고 있다.
'클래스 사띠'(Class Saathi)로 명명된 이 솔루션은 2019년 한국 시장에 첫선을 보였고, 지금까지 1천500여 개 교실에 보급됐다.
작년 초부터 시장 개척을 본격화한 인도에서는 마드햐 프라데시주를 중심으로 약 2천 곳의 학교가 도입했다고 한다.
사띠는 '친구'라는 의미의 힌디어다. 클래스 사띠는 교실의 친구, 학교의 친구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이 솔루션은 배터리가 내장된 리모컨 형태의 학생용 단말기인 클리커(Clicker)와 교사용 스마트폰 앱, 데스크톱 소프트웨어(SW) 등으로 구성된다.
학생들은 클리커에 표시된 '예·아니오'와 '1~5번' 버튼을 조작하는 방법으로 교사가 수시로 던지는 질문에 답할 수 있다.
교사는 블루투스로 클리커에 연동되는 데스크톱이나 스마트폰으로 학생들의 응답 내용을 바로 확인할 수 있다.
판카즈 대표는 "선생님이 가르치고 나서 학생들이 얼마나 이해했는지 곧바로 알 수 있도록 하는 솔루션"이라며 실시간으로 선생님과 학생이 커뮤니케이션하면서 교실 내 모든 학생의 이해도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학급별로 사용할 수 있는 이 솔루션은 출석 확인은 물론이고 반장 선출 투표 등 다양한 안건 처리에 활용할 수도 있다.
또 성적 처리 등 교사가 소화해야 하는 다양한 형태의 통계 작업을 지원해 교사의 일손을 덜어줄 수 있다고 한다.
이 솔루션을 통해 쌓이는 데이터는 맞춤형 교육 프로그램 제작 등 더 나은 서비스를 개발하는 자산으로 활용된다.
판카즈 대표는 사용 환경이 단순한 것과 인터넷 없이 동작하는 점도 이 솔루션의 특장점이라고 강조했다.
"'심플 이즈 더 베스트'(단순한 게 최고)란 말 있잖아요. 그리고 심플하게 보이지만 (양방향 커뮤니케이션을 구현하는) 우리 나름의 노하우가 있어요."
태그하이브는 한국, 인도, 미국 등에서 클래스 사띠 관련 기술과 디자인 등의 지식재산(IP) 34건을 출원해 22건을 등록했다고 밝혔다.
◇ 주력 시장은 인프라 열악한 인도
이 솔루션이 한국 교실에서도 사용되고 있지만 태그하이브가 주력 시장으로 개척하려는 곳은 전반적으로 교육·사회 인프라가 열악한 인도다.
인터넷이 없는 환경에서 쓸 수 있도록 솔루션을 설계한 것도 인도 시장을 염두에 뒀기 때문이라고 한다.
"코로나19 영향으로 사업을 제대로 못 한 점을 고려하면 초기 시장 진입단계로 볼 수 있어요. 시장진입률이 한국에선 현재 1% 정도이고, 인도는 훨씬 더 낮습니다. 인도는 사립 50만 곳을 포함해 초중고교가 150만 곳에 달하는 거대 시장입니다. 코로나19가 어느 정도 진정되는 올해는 인도 시장 진출을 가속화할 생각입니다."
판카즈 대표는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이끄는 현 인도 정부의 교육 정책이 '클래스 사띠' 수요를 폭발적으로 늘릴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모디 정부가 2020년 수립한 새로운 교육정책을 통해 '디지털 인도' 실현을 위한 교육 부문 예산을 2030년까지 GDP(국내총생산)의 6%까지(약 2조 달러) 늘리기로 했기 때문이다.
인도 중산층의 경제력이 계속 커지면서 교육비 지출 규모가 급속히 커지고 있는 것도 호재다.
실제로 지난해 10억원대를 처음 돌파한 태그하이브 매출 중 인도 시장 몫이 90%를 차지해 한국 시장을 압도했다.
판카즈 대표는 클래스 싸띠에 대한 인도 학교 현장의 반응이 좋다며 인도 시장 공략을 위한 마케팅을 강화해 올해 작년의 최소 3배 이상 매출을 올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 "한국, 스타트업 하기 좋은 곳"…빠른 일 처리 등 장점
올해 한국살이 20년 차로 접어든 판카즈 대표는 출구전략을 묻는 말에 "아직 엔트리(입장)도 못 했는데요. 엔트리 먼저 잘해야죠"라며 농담 섞인 답변을 내놓을 정도로 한국어가 능숙했다.
한국에 산 지 3년 째부터 한국어로 꿈을 꿨다고 한다. 말이 잘 통하니 한국 사회에 대한 이해도도 그만큼 깊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런 그에게 한국에서 창업해 사업하는 환경이 어떤지 물으니 "5년 이상 했는데, 할 만하다"면서 첫 번째로 빠른 일 처리, 그다음으로 예측 가능성과 풍부한 정부 지원을 차례로 거론했다.
판카즈 대표는 한국이 에듀테크 분야에서 앞서가는 시장이라서 인도에서 3~5년 후 나올 각종 기술을 먼저 체험하고 벤치마킹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며 한국의 에듀테크 기술을 인도로 수출하는 가교역을 맡겠다고 했다.
태그하이브는 한국 본사에 10명, 인도 콜카타 지사에 20명의 팀원을 두고 있다.
본사를 시장이 큰 인도로 옮기는 문제에 대해선 "올해는 토끼해이니 토끼처럼 빨리빨리 뛰어 많은(더 넓은) 시장을 확보하는 게 우선 포인트"라며 먼 장래에 생각해 볼 문제라고 했다.
◇ "배고파야 밥을 짓는다"
인도 포천지는 유니세프가 글로벌 교육 위기를 해결할 10곳의 테크 스타트업 중 한 곳으로 태그하이브를 선정한 이듬해인 2021년에 '인도의 영향력 있는 젊은 사업가 40명'에 판카즈 대표를 올렸다.
이에 대해 판카즈 대표는 "제가 인도에서 진행하는 교육사업이 평가받은 결과여서 자부심을 느낀다"며 말을 이어갔다.
"저는 인도와 한국에서 교육을 통해 너무 많은 보상을 받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두 나라의 어린 학생들이 교육으로 좋은 삶의 기회를 찾아갈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다는 각오입니다."
판카즈 대표는 애플 창업주인 스티브 잡스의 사진을 사무실에 걸어 놓고 있다.
판카즈 대표는 스티브 잡스가 2005년 스탠퍼드대 졸업식에서 했던 말인 '스테이 헝그리, 스테이 풀리시'(Stay hungry, Stay foolish)를 좌우명으로 삼아 늘 그 말뜻을 되새기면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배가 고파야 밥을 짓지 않겠어요. 그리고 자만하지 말고 겸손하게 살아야죠."
parksj@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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