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연합뉴스) 김상훈 특파원 = 정치권과 고위 공직자들의 방해 속에 1년 넘게 중단됐던 레바논 베이루트 대폭발 참사에 관한 진상조사가 또 한 번 돌부리를 만났다.
직권으로 조사를 재개한 판사가 검찰총장 등을 용의자로 지목해 기소하자, 검찰총장이 반발해 맞불을 놓으면서 조사 진행이 차질을 빚고 있다.
26일(현지시간) 레바논 국영 뉴스통신사인 NNA와 로이터 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가산 오웨이닷 검찰총장은 전날 베이루트 대폭발 참사 진상조사 책임자인 타렉 비타르 판사를 기소했다.
또 비타르 판사에 대한 여행 금지령을 내리고 조사를 위해 소환장도 발부했다.
그뿐만 아니라 오웨이닷 검찰총장은 대폭발 참사와 관련해 체포됐던 용의자들을 전원 석방하라고 명령했다.
그는 로이터에 문자 메시지로 "내가 판사에게 조사를 받으러 가는 대신, 그가 나에게 와서 조사를 받을 것"이라고 썼다.
검찰총장의 이번 조치는 정치인들과 고위 공직자들의 반발 속에 지난 2021년 12월 이후 1년 넘게 중단됐던 진상조사가 비타르 판사의 직권으로 재개된 직후 이뤄졌다.
앞서 비타르 판사는 지난 24일 중단됐던 조사를 재개하면서 검찰총장과 국내 정보기관 국장인 압바스 이브라힘 소장, 전직 군사령관 장 카화지 등을 기소했다.
결국 판사가 직권으로 재개한 진상조사를 검찰총장이 막아서는 형국이 됐다.
이와 관련, 레바논 정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무장 정파 헤즈볼라 측 의원은 검찰총장의 맞대응에 대해 "올바른 방향의 절차"라고 지지했다. 헤즈볼라는 사건의 책임자로 지목된 우호 세력들에 대한 조사를 반대해왔다.
하지만 비타르 판사는 조사를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그는 로이터 통신에 "검찰총장은 대폭발 참사와 관련해 기소됐기 때문에 용의자들을 풀어주거나 다른 사람을 기소할 권한이 없다. 조사를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항구에서는 지난 2020년 8월 4일 대규모 폭발이 있었다. 역사상 가장 강력한 비핵폭발로 기록된 당시의 충격으로 214명이 숨지고 6천여 명이 부상했으며 항구 일대가 쑥대밭이 됐다.
물류창고에 6년 동안 방치됐던 질산암모늄 약 2천750t이 폭발한 것으로 당국은 보고 있다.
그러나 질산암모늄 유입 경로와 방치한 책임자를 찾기 위한 조사는 책임을 회피하려는 정치 지도자와 고위 관리들의 방해 속에 2년 넘게 진전을 보지 못했다.
참사 희생자 유족들은 거리로 나와 철저한 진상조사를 촉구했다.
네드 프라이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대폭발 참사 희생자들에게 정의가 필요하며, 폭발 책임자들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며 신속하고 투명한 조사를 촉구했다.
meola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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