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하락에 투자매력↓·포트폴리오 조정 가능성도…"추세적 현상 아냐"
(서울=연합뉴스) 배영경 기자 = 외국인이 이달 들어 원화채권을 3조원 이상 순매도하고 잔고는 한 달 새 6조원 이상 감소하는 등 이례적인 수급 동향을 나타냈다.
31일 금융감독원 및 금융정보업체 연합인포맥스 등에 따르면 외국인투자자는 이달 들어 약 3조2천200억원 어치의 원화채권을 순매도했다.
외국인이 월별 기준으로 원화채권을 순매도한 것은 지난 2019년 1월(5천400억원) 이후 약 4년 만에 처음이다.
외국인의 원화채권 보유 잔고는 전날 기준 약 222조원으로, 지난해 12월 말 228조5천700억원과 비교할 때 한 달 만에 6조5천억원 이상 줄어든 상태다.
외국인이 보유한 채권의 만기 도래와 수급 상황 등에 따라 잔고가 늘고 줄어드는 것은 통상적인 일이지만, 월간 잔고가 6조원 이상 감소하는 건 흔치 않다.
김지만 삼성증권[016360] 연구원은 "보통은 외국인 투자자들이 채권 현물을 팔더라도 하반기에 연말을 앞두고 매도하는데 상반기에 이 같은 수급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이례적"이라고 평가했다.
일단 올해 들어 빠르게 떨어진 금리가 최근 외국인의 원화채권 순매도 급증 배경 중 하나로 꼽힌다.
채권 금리는 지난해 하반기 부동산 시장 침체에 따른 프로젝트파이낸싱(PF) 리스크 우려와 '레고랜드 사태', 은행채·한전채 고금리 발행 등으로 빠르게 상승했다.
하지만 새해 들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기준금리 인상 사이클이 막바지에 접어들고 이에 따라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도 사실상 끝났다는 기대감이 퍼지며 원화채권 금리는 크게 떨어졌다.
실제 국고채 3년물 금리는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연 3.50%로 인상했던 지난 13일 이후 전날까지 10거래일 연속 기준금리를 밑도는 상황이다.
문홍철 DB금융투자[016610] 연구원은 "최근 외국인들이 매도한 대상은 만기가 짧은 국고채와 통안채가 많았다"며 "이들은 단기 투자성향의 외국인 투자자로, 최근 국내 채권 금리가 떨어져 한미 채권 간 크레디트 스프레드(금리 차이)가 빠르게 축소되자 투자 매력도가 낮아졌다고 판단해 매도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중장기 투자성향의 외국인 역시 수급상 변화를 줬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김명실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중앙은행과 국부펀드 등 중장기 성향의 외국인 투자자들은 자국 외화보유액 감소 여부에 따라 통화별 채권 포트폴리오를 조정하는 경향을 보인다"며 "최근 달러화 가치 하락으로 달러화 비중이 높은 외화보유액이 줄었을 텐데 이에 따라 포트폴리오 조정 차원에서 원화채권 매도 물량이 나왔을 수 있다"고 봤다.
다만 최근 외국인의 잔고 감소나 순매도세가 추세적인 현상으로 굳어져 금리 상승 등의 파급효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증권가의 중론이다.
안예하 키움증권[039490] 연구원은 "최근 외국인의 수급 동향은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기초여건)에 이슈가 생겼기 때문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김상훈 하나증권 연구원도 "외국인의 최근 순매도가 추세적인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면서 "한국의 금리 인상 사이클이 멈추고 한국의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이 발표되면 외국인이 다시 순매수 기조로 전환하게 될 것"으로 예상했다.
ykb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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