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 미사에 쓰인 진혼곡 직접 골라…"천사가 천국 인도한다는 뜻"
"한국 역사에 남을 훌륭한 배우 …존경·존중해달라"
(파리=연합뉴스) 현혜란 특파원 = "우리가 삶을 받아들이듯,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도 참 중요한 것 같아요. 그걸(죽음을) 어떻게 아름답게 받아들이느냐가 중요한 거겠죠."
영화배우 고(故) 윤정희의 남편 피아니스트 백건우(77)는 30일(현지시간) 인생의 대부분을 함께한 아내와 영원히 이별하는 심경을 이같이 표현했다.
아내와 사별한 후 언론에 입장을 밝힌 적이 없는 백건우는 이날 오후 고인이 영면에 든 프랑스 파리 외곽에 있는 뱅센 묘지 앞에서 연합뉴스의 질문에 답했다.
백건우는 "(고인이) 40년 이상 살았던 여기(뱅센)에서 본인이 원한대로 조용히 갈 수 있었다"며 "오늘 장례식이 조용히, 차분하게 끝나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 역사에 남을 훌륭한 여배우를 존경해야 할 것 같다"며 "살아있는 사람을 존중하듯 죽은 사람도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고 밝혔다.
영화배우로서가 아니라 평생을 함께 걸어온 동반자로서, 사랑하는 아내로서 고인은 어떤 분이셨느냐고 묻자 "지금은 이야기할 때가 아닌 것 같다"며 말을 아꼈다.
백건우는 이날 장례 미사에서 사용한 진혼곡을 직접 골랐다. 가브리엘 포레의 레퀴엠 작품 48에 수록된 일곱 번째 곡 '낙원에서'(In Paradisum)다.
그는 이 곡에는 "천사가 이 사람을 천국으로 안내한다는 뜻"이 담겼다며 "(죽음이) 무겁고, 시커멓고, 슬프기만 한 게 아니라 오히려 희망 있게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인터뷰에 응한 백건우는 담담해 보였지만, 목소리는 깊게 잠겨있었다. 고인을 태운 운구차가 화장터로 떠날 때 한참을 바라보던 백건우의 왼손 약지에는 여전히 반지가 끼워져있었다.
백건우는 고인을 1972년 독일 뮌헨 올림픽 문화행사에서 우연히 만났고, 고인이 2년 뒤 프랑스로 영화를 공부하러 유학 왔을 때 파리에서 다시 만나 사랑에 빠졌다.
1976년 재불화가 이응노(1904∼1989) 화백의 자택에서 주변 지인만 초대한 채 고인과 소박한 결혼식을 올린 백건우는 47년 뒤에도 아내를 조용히 떠나보냈다.
이날 고인을 위한 장례 미사에는 백건우와 딸 진희(46) 씨 등 유족과 친지 외에 영화감독 이창동, 최재철 주프랑스 한국대사 등 60여 명이 참석했다.
run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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