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감산카드' 아낀 삼성전자…위기상황 정면돌파로 승부수(종합)

입력 2023-01-31 15:47   수정 2023-01-31 15:51

'반도체 감산카드' 아낀 삼성전자…위기상황 정면돌파로 승부수(종합)
"올해도 반도체 투자 계속"…'인위적 감산 없다' 재확인
혹한기에도 "미래 수요 대응"…시장 지배력 강화 포석
증권가 "공정 전환·라인 재배치 통한 간접 감산은 가능"


(서울=연합뉴스) 김기훈 기자 = 글로벌 경기침체의 골이 깊어지는 상황에서도 삼성전자[005930]의 '반도체 감산' 카드는 나오지 않았다.
경쟁업체들이 속속 설비 투자 축소와 감산에 나서고 있지만, 원가경쟁력 등을 앞세워 위기를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삼성전자는 31일 실적 발표 콘퍼런스콜에서 "메모리 미래 수요에 대비하고 기술 리더십 강화를 위해 중장기 투자는 지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웨이퍼 투입량을 줄이거나 라인 가동을 멈춰 생산량을 줄이는 인위적 감산에 선을 그은 것이다.
삼성전자는 또 "최근 인플레이션과 금리 인상으로 소비자 구매 심리가 위축됐으며 경기 악화 우려로 재고조정이 이어지고 있다"며 "이런 시황 약세가 당장 우호적이진 않지만 미래를 철저하게 준비하기 위한 좋은 기회"라고 말했다.
이어 "수요 대응을 위한 인프라 투자를 지속하겠다"며 "올해 시설투자는 전년과 유사한 수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삼성전자는 지난해 3분기 실적 발표 콘퍼런스콜에서도 인위적 감산은 없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런데도 업계와 증권가에서는 삼성전자가 감산에 동참할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글로벌 경기침체로 IT 수요가 얼어붙으면서 반도체 혹한기가 닥쳤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작년 4분기 반도체(DS) 부문 영업이익은 2천700억원으로 전년 동기(8조8천400억원)보다 96.9% 급감했다.
메모리 반도체 가격도 계속 내려가고 있다.
대만의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글로벌 D램과 낸드플래시 가격은 전분기보다 각각 13∼18%, 10∼15% 하락할 전망이다.
시장 전망도 어둡다.
증권가에서는 올해 1분기 삼성전자 반도체 전체가 적자로 돌아설지 모른다는 전망도 나온다.
증권가가 예상한 1분기 삼성전자 DS 부문 영업손실 전망치는 2조4천770억원(NH투자증권), 1조3천220억원(BNK투자증권), 8천억원(신영증권) 등이다.
실제 적자가 나면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1분기 이후 14년 만이 된다.
실적 눈높이도 낮아지고 있다.
연합인포맥스가 최근 한 달 이내 보고서를 낸 증권사 전망치를 집계한 결과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올해 연간 영업이익 전망치는 19조4천163억원이다. 3개월 전 추정치와 비교하면 43.8% 낮아진 것이다.
주요 반도체 업체들은 일찌감치 감산을 공식화했다.
SK하이닉스는 작년 3분기 콘퍼런스콜에서 올해 투자 규모를 작년의 50% 이상 감축하고 수익성 낮은 제품을 중심으로 생산량을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마이크론도 올해 메모리 반도체 생산을 20% 줄이고 설비 투자도 30% 이상 축소하기로 했다.
수요 위축과 과잉 재고로 반도체 가격이 급락하는 상황에서 감산이 없다면 반도체 가격 하락을 더 부추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삼성전자가 인위적 감산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것은 자신감의 표현이란 분석도 나온다.


경쟁사의 감산 효과가 나타나는 하반기까지 손실을 버티면서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겠다는 구상인 셈이다.
위기 속에서 삼성전자의 입지가 더 공고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경쟁업체들이 감산에 돌입하는 상황에서 삼성전자가 원가경쟁력을 앞세워 물량을 유지한다면 시장 지배력은 더 강화될 수 있다.
다만 업계와 증권가에서는 삼성전자가 '인위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감산을 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삼성전자는 고성능·고용량 DDR5 등 첨단 공정 전환과 파운드리 미세공정 생산능력 확대 중심의 투자를 지속하겠다는 구상이다.
반도체 업계의 특성상 이런 공정 전환 과정에서는 생산량이 감소할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는 감산과 관련해 "최고 품질과 라인 운영 최적화를 위해 생산라인 유지보수 강화와 설비 재배치를 진행하고 있다"며 "미래 첨단 공정으로의 전환을 효율적으로 추진 중"이라고 설명했다.
사실상 공정 고도화 등을 통한 감산은 가능하다는 여지를 남긴 셈이다.
김동원 KB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는 생산라인 재배치와 신규증설 지연, 미세공정 전환 확대 등을 통한 간접적 감산을 시행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감산 효과는 2∼3분기부터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럼에도 인위적 감산을 거부한 삼성전자의 '나홀로 행보'에 업계의 불안감은 가중되고 있다.
팔면 팔수록 손해가 나는 상황에서 삼성전자가 감산에 적극 동참하지 않으면 출혈 경쟁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업황 회복에 대한 주식시장의 기대감도 무너졌다.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 삼성전자는 전 거래일보다 3.63% 내린 6만1천원에 거래를 마쳤다.
주가는 삼성전자의 콘퍼런스콜이 시작되기 전 1% 미만의 하락세를 보였으나, 삼성전자의 향후 사업방향이 전해지면서 낙폭이 커졌다
SK하이닉스도 전 거래일보다 2.43% 하락한 8만8천500원에 거래를 마쳤다.

kihu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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