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로 英 경제·정치 잠식…"정치권 대응 더 굼떠져"
"국민투표 7년 지나도록 아무런 국가문제 해결 못해…사회 후퇴"
(서울=연합뉴스) 전명훈 기자 = 브렉시트를 단행해 유럽연합(EU)과 결별한 지 31일(현지시간)로 꼭 3년이 됐지만 영국은 이렇다 할 기념식 없이 조용히 하루를 보냈다.
경제 전망도 어둡고 사회문제도 내부에 첩첩이 쌓여 있어 떠들썩한 팡파르를 울릴 분위기가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영국의 현재 경제 사정은 다른 유럽 주변국보다 더 좋지 않다.
이처럼 영국이 EU 주변국보다 경제위기로 더 큰 고통을 받는 것은 다름아닌 브렉시트가 단초가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고 뉴욕타임스(NYT)가 보도했다.
아넌드 메넌 킹스칼리지런던 교수는 "우리 경제가 취약해진 원인 중 하나가 브렉시트"라며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아니겠지만, 브렉시트로 모든 것이 정치적 문제가 됐다. 이젠 경제 논의마저 정치를 통해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영국의 올해 경제 전망은 어둡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주요국 중 유일하게 영국의 올해 경제성장률을 마이너스(-0.6%)로 예상했다. IMF는 온갖 경제 제재를 두들겨 맞은 러시아마저 플러스(0.3%) 성장을 예상했다.
브렉시트가 이런 부진의 일부 요인이라고 IMF는 분석한다. 영국에서 최근 노동력 공급 상황이 빠듯한 것도 EU를 탈퇴한 이후 해외 노동력 유입이 더욱 까다로워졌기 때문으로 지적된다. NYT는 브렉시트의 불똥으로 식당 웨이터부터 논밭의 농부까지 일손이 부족해지고 있다고 전했다.
메넌 교수는 "(브렉시트 국민투표가 진행된) 2016년 이후 정부 행정력이 아무런 힘을 쓰지 못했다"며 "벌써 7년이 지났는데도 정부 층위에서 국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해놓은 것이 아무 것도 없다"며 경제뿐 아니라 사회 분야에서도 브렉시트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진단했다.
무엇보다 영국이 자랑하던 공공 보건의료체계 국민보건서비스(NHS)가 최악의 위기에 빠졌다. 병원이 환자로 넘쳐나고, 앰뷸런스를 부르려면 수 시간씩 기다리는 것도 일상이 됐다.
1일에는 10년 만의 최대 규모 파업이 시작된다. 교사, 철도 노동자, 공무원 등 다양한 공공분야 노동자들이 대거 일자리를 비우고 거리로 쏟아져나오고 있다.
NYT는 정부와 정치권이 이런 문제에 속수무책인 것도 브렉시트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브렉시트 이후 집권 보수당은 계파 분열로 갈기갈기 찢어진 탓에 기민한 정책 대응이 늦어지고 있다. 도시 계획부터 EU와의 새로운 관계 정립 등 할 일이 태산이지만 결과물이 좀처럼 나오지 않고 있다고 NYT는 평가했다.
답답한 상황이 이어지며 영국인들 사이에서 브렉시트에 대한 환멸도 커지고 있다.
2016년 국민투표에선 51.9%가 브렉시트에 찬성했지만, 작년 11월 여론조사업체 유고브의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56%가 브렉시트는 '실수'였다고 응답했다. 브렉시트에 찬성하는 여론은 32%에 그쳤다.
브렉시트에 대한 여론을 전체 629개 선거구별로 조사한 결과, "영국이 EU를 떠난 것은 잘못이었다"는 명제에 대한 동의가 우세한 선거구가 무려 626곳에 달했다. 그렇지 않은 선거구는 단 3곳, 이민자 문제가 현안인 동부 농촌뿐이었다.
소셜미디어에서는 IMF의 우울한 경제전망이 'EU 잔류파'나 '브렉시트 찬성파' 어느 쪽에 도움이 될지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브렉시트를 후회하는 듯한 여론이 힘을 얻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EU 재가입 논의를 감히 먼저 입에 올리는 사람은 아직 찾기 어렵다.
브렉시트 단행 당시처럼 거센 논란이 재현될 것이 뻔한데, 그 부담을 지고 나설 정치적 리더십을 가진 인물도 당장은 없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야당 노동당조차 '브렉시트가 제 역할을 하게 만들자'는 슬로건을 내미는 데 그치고 있다.
NYT는 "브렉시트 논란이 너무 거셌던 탓에 리시 수낵 총리로서는 마땅한 반응을 하는 것도 '어려운 선택'이 됐다"고 했다.
조너선 포테스 킹스칼리지런던 교수는 "문제는 정부가 경제 성장을 회복할 계획마저 전혀 없는 레임덕 상태라는 점"이라고 한탄했다.
포테스 교수는 그러면서 "수낵 정부가 할 수 있는 조치들이 있다. 이민 규제를 뜯어고쳐 노동력 규제를 완화하는 것 등"이라며 "이런 것을 해낸다면 지난 10년보다 앞으로의 10년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id@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