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한국이 왜 변방이죠?" 이은정 베를린자유대 학장이 던진 질문

입력 2023-02-03 06:10  

[인터뷰] "한국이 왜 변방이죠?" 이은정 베를린자유대 학장이 던진 질문
한독수교 140주년 계기 묄렌도르프 재평가 필요…"안팎 오리엔탈리즘 극복해야"

(베를린=연합뉴스) 이율 특파원 = "한국이 왜 변방이죠? 동아시아 지도를 보세요. 한국이 중심이에요"
아시아인 여성 최초로 독일 베를린자유대 역사문화학부 학장으로 선출된 이은정 한국학과 교수는 최근 한독수교 140주년을 맞아서 한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반문했다.


이 교수는 "우리는 굉장히 오랫동안 우리 스스로가 동아시아의 변방이라고 생각해왔다"면서 "이는 유럽 사람들이 우리를 보는 시각을 스스로 내재화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래서 유럽사람들이 우리에 대해 편견을 갖고 있더라도 관심을 가져준 것 자체에 고마워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제는 틀린 부분, 문제인 부분에 대해서는 잘못됐다고 지적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을 극복해야 하는 동시에, 서방의 오리엔탈리즘에 대해서는 비판을 이어가야 한다는 게 그의 신념이다.
독일 내 현재 지식인들은 대부분 한국을 중국이나 일본의 변방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지금 K팝 등을 좋아하는 10∼20대 청소년들은 일본이나 중국과 상관없이 한국을 아는 이들이다.
이 교수는 "이들이 사회적으로 역할을 할 한독수교 150년까지 독일 기성세대나 언론이 한국에 대한 편견이 모두 사라져, 있는 그대로 한국을 좋아하고 사랑할 수 있게 하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를 위해 앞으로 10년 후를 바라보고 한독관계를 정리한 문서 등 분야별 기초자료를 수집, 정리해 데이터베이스로 만들 예정이다. 이를 통해 청소년들이 한국에 대한 관심이 계속될 수 있도록 자료를 제공하고, 다양한 계층의 기성세대도 계속해서 호기심을 갖게 한국을 주제로 한 '말 걸기'에 나선다는 게 그의 계획이다.
이를 위해 베를린자유대 한국학과에서는 한독수교 140주년 기념 특강 시리즈를 시작했다.
그 첫 연사로 나선 이 교수는 독일 사회에 말 걸기를 위한 모멘텀으로 140년 전인 1883년 조선과 독일 사이 통상조약 체결 당시 최초 외국인 고문으로 조선을 대표해 협상에 나서고 서명했던 독일인 파울 게오르크 폰 묄렌도르프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묄렌도르프는 고종이 외국에 문호를 개방하는 과정에서 청의 이홍장 추천으로 영입한 최초의 외국인 고문으로 외교 참판을 지내며 1882∼1885년 외교와 세관 업무를 맡았던 인물이다.


이 교수는 "중국, 일본, 러시아에 영국과 미국까지 주변 강대국이 각자 자국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조선을 두고 세력 싸움을 벌이던 시기에 묄렌도르프는 무엇보다 조선의 독립을 보장하기 위한 현실적인 방법을 모색했다"면서 "140년 한독관계를 봤을 때 독일인 중 묄렌도르프만큼 한국을 이해하고, 한국을 위해 뭔가를 해보려고 노력한 사람은 드물다"고 설명했다.
묄렌도르프는 이런 노력으로 인해 열강의 공격 대상이 됐고, 결국 조선에 온 지 3년이 채 안 돼 떠나야만 했지만 한국과 독일이 특별한 관계를 맺게 된 디딤돌이 된 만큼, 양국 친선관계에 갖는 의미를 재평가해서 모멘텀으로 삼아야 한다는 게 이 교수의 지적이다.
이 교수는 이와 더불어 '하멜 표류기'로 유럽에 처음 조선을 알린 헨드릭 하멜을 기리는 데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유럽 최대 한국학회인 유럽한국학회가 우수한 한국학 논문을 쓴 학자에게 5년째 하멜상을 주고 있는데 하멜은 18∼19세기까지 뱃사람들이 인근 해안을 지나가기 무서워할 정도로 조선을 험악한 나라로 그린 인물"이라며 "이는 유럽의 한국학자들의 시각이 하멜이 설명한 조선을 보는 시각에서 많이 벗어나지 못했다는, 아직도 오리엔탈리즘적 시각이 남아있다는 방증"이라고 지적했다.
yulsid@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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