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로 1천235㎞, 버스로 750㎞ 이동 강요
(로마=연합뉴스) 신창용 특파원 = 지중해에서 국제구호단체가 운영하는 난민 구조선에 구조된 뒤 꼬박 나흘간의 항해 끝에 이탈리아 서북부 리구리아주의 라스페치아 항구에 도착한 난민들의 여정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탈리아 정부가 라스페치아 항구에 하선한 난민 중 보호자를 동반하지 않은 미성년자들을 동남부 풀리아주 포자로 보내기로 했다고 일간지 '코리에레 델라 세라' 등 현지 언론매체들이 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국경없는의사회(MSF)가 운영하는 난민 구조선 '지오 베런츠'호는 지난달 28일 난민 237명을 태우고 라스페치아 항구에 입항했다. 라스페치아 항구는 '지오 베런츠'호가 구조 활동을 벌인 리비아 해안에서 항로로 1천235㎞ 떨어진 곳이다.
최근 이탈리아 정부는 지중해에서 표류하는 난민을 구조하는 국제구호단체의 난민 구조선이 바라는 것보다 훨씬 멀리 있는 항구를 잇따라 배정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반난민 정책을 내걸고 있는 이탈리아 정부가 난민 구조선의 연료비 부담을 높이고, 구조 활동의 횟수를 줄이는 등 난민 구조 활동을 방해하려는 의도로 일부러 먼 항구를 배정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지오 베런츠'호는 꼬박 나흘간의 항해 끝에 라스페치아 항구에 도착했지만, 난민들의 고된 여정은 계속됐다.
라스페치아에는 난민 수용 시설이 충분치 않아 보호자를 동반하지 않은 미성년자 74명을 전국 각지로 보내기로 한 것이다.
이 중 23명은 리구리아주에서 담당하고, 나머지 51명은 리보르노, 알레산드리아, 포자에서 분산 수용키로 했다.
이탈리아 동남부에 있는 포자는 라스페치아 항구에서 750㎞ 떨어져 있다. 미성년자 중 일부는 북쪽으로 나흘간 항해한 뒤 다시 남쪽으로 버스를 타고 11시간을 내려가게 된 셈이다.
이런 사실은 인도주의 단체들을 통해 알려졌고, 이탈리아 현지 언론에서도 "난민들을 택배 분류하듯 한다"며 정부의 처사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탈리아 정부는 지난해 10월 극우 정치인 조르자 멜로니 총리가 취임한 위 강경 반난민 노선을 걷고 있다.
취임 전부터 불법 이민자에 대해 강경 대응을 예고한 멜로니 총리는 지난해 11월 국제구호단체 소속 난민 구조선 4척의 입항을 거부해 프랑스 등 다른 유럽 국가들과 갈등을 빚었다.
이탈리아 정부는 작년 12월 난민 구조선이 지중해에서 표류하는 유럽행 이주민을 구조한 뒤 곧바로 입항을 요청해야 하고, 지정받은 항구로 지체 없이 가야 한다는 내용의 법령을 승인했다.
이러한 규정을 위반하면 해당 선박의 선장에게 최대 5만 유로(약 6천700만원)의 벌금을 부과하고, 반복해서 위반할 시에는 선박을 몰수할 수 있도록 했다.
'지오 베런츠'호는 첫 구조 활동을 통해 69명을 구조한 뒤 라스페치아 항구로 향하는 도중 추가로 두 차례 더 구조 활동을 펼쳐 구조 활동 횟수를 1회로 제한한 법령을 위반했다.
이에 대해 '지오 베런츠'호 선장과 MSF 대표는 1일 경찰서에서 8시간 동안 조사를 받았다.
이탈리아 정부는 '지오 베런츠'호가 법령을 위반했는지를 90일간 심의한 끝에 벌금 부과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changy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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