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 묵은 화물차 '지입제' 제거수술 착수…이번엔 성공할까(종합)

입력 2023-02-06 19:19  

60년 묵은 화물차 '지입제' 제거수술 착수…이번엔 성공할까(종합)
영업용 번호판 하나로 수천만원 수익…전체 22%인 10만대가 지입차
원희룡 "비정상적 기생구조 타파"…화물연대 "화주기업 입장만 반영" 반발



(서울=연합뉴스) 박초롱 기자 = 정부가 화물차 안전운임제를 폐지하고 표준운임제를 도입하는 방안과 함께 화물운송사업 정상화의 승부수로 지입제(持入制) 퇴출을 꺼내들었다.
1960년대부터 이어져 온 화물 운송시장의 구조적 문제인 '번호판 장사'를 뿌리 뽑겠다는 것이다. 역대 정부가 여러 차례 시도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던 해묵은 사안이라 이번엔 다를지 주목된다.
지입제 폐지와 함께 추진하는 표준운임제에 대해선 169석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과 화물연대, 운송사들이 반대하고 있어 논의 과정이 순탄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 뿌리 깊은 지입제…화물운송시장 태동부터 함께한 역사
지입제는 화물차 기사가 자신의 차량을 운송사 명의로 등록한 뒤, 영업용 번호판을 받아 영업하는 방식이다.
총량이 제한된 화물운송 면허가 없으니 통상 번호판 하나에 2천∼3천만원의 지입료를 주고서라도 운송에 뛰어들 수밖에 없다.
한국교통연구원이 2019년 발표한 '화물자동차운송사업의 지입제도에 관하여' 보고서에 따르면 이 제도는 1960년대 우리나라에 화물차 운송시장이 태동하면서부터 존재해왔다.
당시 운송사업이 일본의 제도를 상당 부분 받아들여 정립되면서 지입제가 그대로 밀려 들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감을 따오지 않고 번호판 장사만 하는 지입전문회사의 폐단이 나타난 것은 2000년대 중반부터다.
2000년대 초반까지 화물차 운송시장은 등록제로 운영돼, 신규 차량 진입이 자유롭게 이뤄졌다. 화물차 면허를 취득하고 등록하면 누구나 영업할 수 있었다.
차종별로 증차를 제한하고, 영업용 번호판을 단 화물차 진입만 허용하는 허가제가 도입된 것은 2004년부터다. 화물차 과잉공급으로 인한 운임 하락에 반발한 화물연대의 2003년 총파업이 계기가 됐다.
신규 화물차의 진입을 막기 위한 조치였던 허가제 도입 이후 시장에 진입하기 위한 방안으로 지입제가 적극 활용됐다.
일부 운송사들은 공급 제한을 악용해 번호판에 프리미엄을 붙여 빌려주기 시작했다. 번호판이 없으면 운행을 못 하는 차주들에게 수천만원의 권리금을 받았다.
권리금을 차주에게 돌려주지 않거나, 차주가 노후 차량을 교체하려 하면 동의 비용을 요구하는 등 갖가지 명목으로 돈을 챙겼다.



◇ 지입전문회사 소속 화물차 10만대 추정…전체의 22.5%
정부가 1순위 퇴출 대상으로 지목한 것은 일감 제공 없이 번호판 대여만으로 수익을 올리는 지입전문회사다.
현재 사업용 화물차는 44만5천대다. 이 중 23만대가 법인차로, 지입전문회사에 소속된 차량은 10만대로 추정된다.
전체 사업용 화물차의 22.5%가 번호판 비용을 내는 지입차인 셈이다.
정부는 운송 실적이 아예 없거나 미미한 운송사가 보유한 화물 운송사업용 번호판을 회수할 계획이다.
운송사가 제공해야 할 일감의 기준을 20%로 둘 방침이다. 컨테이너 화물차 기사 평균 매출액이 1억원이라면 최소 2천만원을 지입회사에서 제공하지 않으면 번호판을 빼앗아 화물차 기사에게 주겠다는 것이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운송 일감 제공 없이 번호판 장사, 도장값 등 여러 명목으로 실제 일하는 차주들에게 돌아가야 할 노동의 몫을 중간에서 뽑아가고, 이를 화주와 소비자인 국민에게 전가하고 있는 비정상적인 기생 구조를 타파하겠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화물차의 탄력적 공급을 제한하는 수급조절제를 개선할 방침이다.
운송사가 차량과 운전자를 직접 관리하는 직영차량에 대해선 신규 증차를 허용하고, 대·폐차 시 차종·톤급별 교체범위 제한을 현행 '5t 이내 상향 허용'에서 '10∼16t'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정부는 2004년·2010년 등 계속해서 지입제 개선 시도를 해왔지만, 이번에는 어느 때보다 의지가 강하기 때문에 과거와 다를 것이라는 입장이다.



◇ 3월 법안 통과 목표…첩첩산중
표준운임제 도입과 지입제 폐지 등 '화물운송사업 정상화 방안' 추진을 위해선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 개정이 필요하다.
국민의힘 성일종 정책위의장은 "조만간 법안을 제출하게 될 것"이라며 "가장 대표적인 민생법안, 중점법안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당정은 3월 국회 통과를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구조개혁 문제인 지입제 폐지에 앞서 표준운임제를 놓고서부터 반발이 거세다.
민주당은 기존 안전운임제를 3년 연장하는 법안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심사하지 않을 경우 본회의에 직회부하겠다는 입장이다.
화물연대는 안전운임제 없이 화물 노동자 처우개선은 불가능하다고 반발한다.
화주가 운송사에 지급하는 운임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화물 노동자가 받는 최소 운임 역시 지켜지기 어렵다는 것이다.
화물연대는 성명서를 통해 정부가 화주 입장만 반영해 안전운임제를 폐지했다고 비판하며 "안전운임제 사수와 제도 개악 반대를 위해 끈질기게 투쟁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화물연대는 "화물 노동자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과로·과적·과속으로 내모는 저운임 구조에 대한 분석과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며 "화물 운송을 외주화하고, 최저입찰제 도입으로 운송료를 깎아 비용을 화물 노동자에게 전가해온 화주 자본의 책임부터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화물차 수급조절제 등 화물차 공급 규제 완화 방안을 놓고선 특히 의견 대립이 거세다.
화물연대는 "공급규제 혁파는 사실상 화물차 증차의 효과를 가져올 것이고, 운임 하락의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화주 측은 운임의 비강제화가 전면적으로 이뤄지지 않은 점에 대해선 아쉬움을 표하면서도 구조개혁 방향에는 찬성한다는 뜻을 밝혔다.
한국무역협회 김병유 회원서비스본부장은 "화물운송시장 왜곡의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는 화물차 허가제·수급 조절제를 개선하려는 당정의 시도는 매우 바람직한 방향"이라며 "조속한 시일 내에 전면적으로 도입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임재국 대한상의 연구위원은 "우리 화물운송시장은 다른 나라에 비해 이해관계자들이 많아 7차, 8차 방정식을 풀어야 하는 상황"이라며 "이해관계자들의 합의를 끌어내기 위한 정부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chopark@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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