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 전광판엔 검은색 근조 리본…침통한 시민들, 스마트폰으로 지진소식 체크
생수·쌀·콩 등 비상식량, 진열대서 바로 사라져 채우기 바쁜 손길…렌터카 구하기 '발동동'
고속도로 휴게소·주유소, 구조 인력 '인산인해'…차 안에서 끼니 때우고 현장으로
(이스탄불·앙카라·아다나[튀르키예]=연합뉴스) 조성흠 특파원 = 대규모 지진이 강타한 지 사흘째인 8일(현지시간) 튀르키예 지진 현장으로 출발하는 길 이스탄불에는 올 겨울 들어 처음으로 함박눈이 내렸다.
예년 같았으면 이례적으로 늦은 눈 소식이 신기하고 반가울 수도 있었겠지만, 지진 현장에선 단 1초도 아쉬운 골든타임에 내린 눈은 폐허 속에서 간절히 구조를 기다리고 있을 생명들을 떠올리게 했다.
지진뿐만 아니라 튀르키예 전역에 닥친 강추위와 눈, 비는 전국 각지의 공항에도 타격을 줬다.
진앙 주변의 가지안테프 공항이 일시 폐쇄된 것을 비롯해 전날 이스탄불 공항이 악천후로 운영되지 못하면서 이날도 항공편이 줄줄이 지연됐다.
이날 이스탄불을 출발해 잠시 경유한 수도 앙카라의 국제공항에는 대형 전광판에 검은색 근조 리본이 떠 있었고, 시민들은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는 중에도 스마트폰으로 지진 소식을 찾아보는 등 내내 침통한 분위기였다.
이런 가운데도 한 줄기 희망처럼 세계 각국에서 구호의 손길이 끊임없이 밀려오고 있었다.
앙카라 국제공항에서는 남색과 주황색 유니폼에 러시아 국기를 부착한 남녀 구조대원 수십 명이 이동하고 있었다.
러시아는 지난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서방 대부분과 출입국이 단절됐으나, 전쟁을 중재하려는 튀르키예와는 우호적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이번 지진 직후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직접 지원을 지시했다.
앙카라를 거쳐 피해 지역에서 멀지 않은 아다나 공항에 도착하자 수백 명의 군인들이 활주로 옆에서 출동을 기다리는 듯 집합해 있었다. 다른 나라에서 도착한 듯한 구조대원들도 비행기에서 내려 버스에 탑승하고 있었다.
워낙 많은 이들이 구조 활동에 나선 탓인지 차량도 구하기 힘들 정도였다.
직선거리로 진앙에서 170㎞ 떨어진 아다나 공항에는 10개 안팎의 렌터카 업체가 영업 중이었지만, 모든 차량이 다 나가고 딱 1대가 남아있었다. 뒤늦게 온 다른 이들이 동분서주했지만 차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취재 기간 필요한 최소한의 물과 식량을 구입하기 위해 들린 아다나 시내 대형 마트는 일상적인 마트의 풍경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대부분 대형 카트에 10ℓ 대형 생수통 여러 개와 쌀, 콩 등을 자루째 담고 있었다. 일부는 이불과 석탄까지 잔뜩 쟁인 모습이었다.
이번 강진의 주요 피해 지역인 하타이에 있는 지인의 요청으로 물과 식료품을 샀다"고 말한 메흐멧 씨는 취재진의 행선지가 하타이라는 곳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거기 상황은 최악이다. 전기도 물도 식량도 부족하다"고 걱정했다.
종업원들은 진열대에 채워넣자마자 사라지는 물과 식료품을 채워넣느라 바빴다. 이불 코너에서 만난 직원은 "여기가 아다나에서 제일 큰 마트인데도 물건이 없다. 이불은 다 하타이로 갔다"고 말했다.
계산대의 종업원 파트마 씨는 "지진이 난 날부터 벌써 사흘째 아침부터 밤까지 쉴 틈 없이 일하고 있다. 튀르키예뿐만 아니라 미국, 유럽, 아시아까지 전세계에서 봉사자들이 몰려와 물건을 사간다"며 "정말 감사한 일"이라고 말했다.
아다나를 떠난 구호 행렬은 하타이로 향하는 고속도로로 계속해서 이동했다.
고속도로 휴게소와 주유소는 튀르키예 재난위기관리청(AFAD) 대원들과 군인들, 구호 물자를 실은 자원봉사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이들은 앉아서 식사할 틈도 없이 차 안에서 간단한 빵과 음료수로 끼니를 때우고는 서둘러 현장으로 떠났다.
jos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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