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이우 머무는 김형태 주우크라 대사 인터뷰…"상시 공격 위협 노출돼 있지만 감내"
"사력 다한 국외 탈출, 인명피해 없어 천만다행"…긴박했던 1년전 상황
"우크라 전후 재건, 한국이 벤치마킹 모델…재건사업 긴밀 협의"
(카이로=연합뉴스) 김상훈 특파원 = "아직도 매일 공습경보가 울리고 한 달에 3∼5회 정도 실제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30여 명 남은 교민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인도적 지원과 함께 전후 재건에 한국이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긴밀하게 협의하고 있습니다."
김형태 우크라이나주재 한국대사는 전쟁 발발 1년을 일주일가량 앞둔 지난 16일(이하 현지시간) 연합뉴스와 전화 인터뷰에서 아직 상시적인 위협이 존재하지만, 생업 등 때문에 현지에 남은 교민의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 대사는 또 인도적 지원과 함께 향후 진행될 전후 재건 사업에서 한국이 중요한 역할을 하도록 우크라이나 정부와 긴밀히 협의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다음은 일문일답.
-- 지난 1년간 전쟁 중인 국가에서 대사관 업무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 주재국에서 전쟁을 경험하는 것은 처음이다. 전쟁 중인 국가에서 대사관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국민 보호이고, 이것이 지난 1년간 대사관의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하는 지상 과제였다. 전쟁 상황이어서 위험과 불편함이 있지만 감내하고 있다.
-- 개전 후 1년간 대사관 활동 상황을 설명해달라.
▲ 작년 1월 중순부터 전쟁 전까지 한 달간 대사관은 전쟁이 난다는 전제하에 비상 근무체제로 전환하고 재외국민 보호 준비와 더불어 교민 출국을 독려했다. 그 결과 전쟁 발발 전날인 2월 23일까지 560여 명의 교민 중 460여 명이 출국했다.
전쟁 후 두 달은 직접 발로 뛰는 기간이었다. 모든 비행편이 끊기고 아수라장이 된 상황에서 육로로 탈출해야 하는 교민의 출국 지원이 과제였다. 당시 100명 정도 남은 교민들을 육로로 안전하게 탈출하도록 도왔다. 특히 60여 명의 교민은 대사관 직원들이 직접 운전하거나 호송해서 국경을 넘겨드렸다. 그렇게 4월 말까지 대피 업무를 일단락지었다.
4월 말 키이우로 복귀한 이후 지금까지는 잔류 교민 보호 업무와 함께 우크라이나에 대한 인도적 지원과 재건 협의 등 외교업무에 주력하고 있다.
-- 전쟁 발발 후 가장 위협적이었다고 느낀 순간은.
▲ 아무래도 전쟁 발발 초기가 가장 위험했다. 작년 3월 2일 탈출 전 일주일 정도는 온종일 시내에서 총격전이 있었고, 공습경보와 대공포 사격, 미사일 공격이 밤까지 이어졌다. 또 지상군이 키이우를 포위하면서 점점 다가왔던 시기여서 그때가 가장 위협적이었다. 항구는 전쟁 발발 사흘 전부터 막힌 상황이어서 어떻게 하면 교민들을 육로로 안전하게 이동시킬지를 고민했다.
-- 현재 우크라이나에 주재하는 우리 공관원들과 현지 교민은 얼마나 되나.
▲ 현재 우크라이나는 여행경보 4단계 여행금지 국가로 외교부의 예외적 여권 사용 허가를 받은 국민만 들어올 수 있다. 10여 명의 대사관 직원은 모두 가족과 떨어져 생활하고 있고, 현지에 남아있는 우리 교민은 30여 명 정도다.
-- 대사관의 적극적인 안전조치로 우리 교민의 인적 피해는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알려지지 않은 인적 피해나 교민들의 물질적인 피해는 없었나.
▲ 천만다행으로 인적 피해는 없었다. 다만 생업 기반이 여기에 있는 분들, 특히 동남부 지역 거주민들은 물질적 피해를 본 경우가 일부 있다. 가족이 운영하는 농장이 교전 지역에 있었기 때문에 포탄 등에 의해 피해를 본 경우가 있다. 운영하던 식당이 문을 닫으면서 여러모로 피해를 본 분도 있다.
-- 대사관에서 교민 안전을 위해 취하는 조치들은 어떤 게 있나.
▲ 작년 가을까지는 하루에 두 번씩 교민 안부를 확인했는데 교민들께서 줄여도 괜찮겠다고 해서 지금은 하루에 한 번씩 하고 있다. SNS를 통해 문자를 보내고 안전한지 짧게 답을 해달라고 요청한다. 대규모 공습이 예고되거나 실제 공습이 있을 때는 특별히 전화로 안전한지 확인한다. 그 외에 작년 8월에 진짜 만약의 상황(핵전쟁 등)에 대비하기 위해서 방호복, 방독면, 요오드 등도 한국에서 공수해 배포했고, 휴대전화 충전기 핫팩, 비상식량 등도 나눠드렸다.
-- 현지의 피해 상황은 얼마나 심한가.
▲ 전쟁이 터지고 1년이 지난 현재 우크라이나 경제 상황이 정확히 어떤지를 알 수 있는 통계수치는 없지만, 물가는 2배로 뛰었고, 일자리가 축소되는 등 엄청난 타격을 입었다. 전쟁을 피해 떠났던 교민들이 돌아오더라도 예전과 같이 일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 최근까지도 키이우 외곽에 러시아군의 미사일 공격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 키이우는 안전하다고 봐도 되나.
▲ 안전하다고 표현하기 어렵다. 전쟁 발발 이후 1년간 키이우에 공습이 끊긴 적이 없다. 특히 작년 10월부터 시작된 에너지 인프라에 대한 대규모 공격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미사일 공격 징후가 있으면 우크라이나 전역에 공습경보가 울리는데 키이우도 예외가 아니다. 공습경보는 매일 듣고 있고 실제 공격이 이뤄지는 것은 월 3∼5회 정도다. 키이우를 포함한 우크라이나 전역이 상시 공격 위협에 노출되어 있다.
-- 전쟁 발발 1년이 되는 오는 24일 대대적인 공격이 있을 거라는 우려가 있다. 대비를 하고 있나.
▲ 그런 상황을 예측하기 어렵지만 교민들께 신변안전에 각별히 유의해 달라고 당부했고, 위협상황이 전개되면 바로 대피하거나 출국하도록 권유했다. 상황이 악화하는 것에 대해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다.
-- 우크라이나 국내에도 많은 난민이 있다고 들었다. 현지의 난민 상황은.
▲ 유엔은 현재 우크라이나 국내 난민을 600만 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때 국내 난민이 700만 명까지 늘었었는데 100만 명은 수복지역으로 돌아갔다. 나머지 600만 명의 국내 피란민들은 하르키우, 드니프르, 자포리자, 키이우와 서부지역에 넓게 퍼져있다. 우크라이나 정부와 국민, 유엔 기구들이 힘을 합쳐서 이들을 지원하고 있다. 추운 겨울을 보내면서 숙소, 전기, 물, 난방 등 문제로 매우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올겨울 추위가 그렇게 심하지는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다.
-- 러시아군의 에너지 시설 파괴로 추위에 전력난도 심한 것으로 듣고 있다.
▲ 전력난은 작년 11∼12월이 제일 심했다. 지금은 순환 단전을 하고 있고 키이우는 하루에 8시간 정도 정전이 됐었는데 지금은 상황이 조금 나아졌다. 매일 지역별로 4∼8시간 정전이 된다고 보면 된다. 정전이 예고됐는데도 불구하고 전기가 들어오면 매우 기뻐하는 상황이다.
전기로 작동하는 트램 등 교통수단은 운행이 중단된 상태다. 오후 4시만 되면 어두워지는데 주요 도로를 제외하고는 가로등도 켜지 않기 때문에 저녁이 되면 암흑의 도시로 변한다.
-- 한국에서도 정부 차원 이외에 기업이나 개인들도 난민 지원을 하는 것으로 안다.
▲ 정부 차원의 지원 이외에 한국 국민. 지자체, 기업, 비정부기구(NGO) 등이 인도적 지원을 했고, 이에 대해 우크라이나 국민이 감사의 뜻을 표명하고 있다. 전쟁이 1년 가까이 지속되고 전 국토가 파괴된 상황이기 때문에 일상생활을 유지하는 데 쓰이는 물건은 모두 필요한 상황이다.
우리의 인도적 지원 중에는 의약품과 의료기기가 3분의 1 정도를 차지한다. 생명과 안전에 직결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많이 지원했다. 또 발전기는 물론 학교가 파괴되면서 온라인 수업이 필요한 학생들을 위해 태블릿 PC도 6천 대 지원했는데 요긴하게 쓰이고 있다.
한국 제품은 품질이 좋기 때문에 이곳에서 환영받고 있다. 마치 과거 우리가 미국, 독일, 일본 제품을 선망했던 것과 비슷하다.
-- 아직 전쟁이 진행 중이긴 하지만 재건 사업이 시급할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에서도 한국에 재건 사업에 참여해달라는 메시지를 여러 경로로 보내는 것으로 안다. 구체적으로 논의가 진행되는 것이 있는지.
▲ 우리 정부는 인도적 지원 외에도 우크라이나 정부와 전후 재건을 위한 긴밀한 협의를 하고 있다. 작년 7월 우크라이나가 전후 재건 계획을 발표하면서 한국을 벤치마킹 모델로 삼았다. 한국의 높은 제조업 기술 수준과 세계적인 한국기업들에 대해 높은 기대를 하고 있다. 피해 복구 단계에서 한국 제품에 대한 수요가 높다. 재건 사업에서 한국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믿고, 우크라이나 정부와 접촉하면서 긴밀하게 협의해 나가고 있다.
meola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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