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리아 호숫가서 파란트로푸스 속 어금니와 함께 나와
(서울=연합뉴스) 엄남석 기자 = 아프리카 빅토리아 호숫가에서 약 290만 년 전 하마를 도살하고 식물을 빻는 데 이용한 가장 오래된 석기가 발굴됐다.
석기시대를 연 '올도완(Oldowan) 석기'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것일 뿐만 아니라 원시인류인 파란트로푸스(Paranthropus) 속(屬)의 어금니가 함께 나와 누가 이 석기를 만들었는지도 관심을 끌고있다.
미국 스미스소니언 연구소의 인류기원프로그램 연구원인 토머스 플러머 퀸즈대학 교수가 이끄는 국제연구팀은 케냐 서부 호마 반도의 은야얀가에서 올도완 최고(最古) 석기와 파란트로푸스 속 어금니 등을 발굴한 결과를 과학저널 '사이언스'(Science)에 발표했다.
스미스소니언과 외신 등에 따르면 이 석기는 지금까지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돼온 약 260만년 전 올도완 석기가 나온 에티오피아 레디-게라루에서 약 1천300㎞ 떨어진 곳에서 발굴됐다.
연구팀은 방사성 원소 반감기와 지구 자기장 변화 등 여러 가지 증거를 종합해 약 290만년 전 유물로 특정했지만 시기는 258만∼300만 년 전으로 확대될 수도 있는 것으로 제시했다.
연구팀은 특히 파란트로푸스 속 어금니가 올도완 석기와 함께 발굴됐다는 것은 누가 이 석기를 만들었는지에 대한 흥미로운 질문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라고 했다.
석기는 현생인류가 속한 '사람(Homo) 속'만 만들 수 있는 것으로 여겨져 왔는데 파란트로푸스 화석 옆에서 올도완 석기가 발굴됨으로써 주인을 둘러싼 의문이 생기게 됐다는 것이다.
적어도 사람 속 이외에 다른 계통의 원시인류도 비슷한 시기에 올도완 석기를 만들어 쓰거나 올도완 석기시대를 연 주인공이 사람 속이 아닐 수도 있게 된 셈이다.
연구팀은 은야얀가에서 2015년부터 이어져 온 발굴에서 올도완 석기를 비롯한 330점의 유물과 1천776점의 동물 뼈, 파란트로푸스 속 어금니 두 개 등을 발굴했다.
이 석기들은 다른 돌을 가격해 석기를 만들거나 재료를 빻는 데 이용한 '돌망치'와 자르개 등으로 쓸 수 있는 '박편'(剝片), 박편을 뗀 '석핵'(石核) 등 3종류였다.
에티오피아 올도완 석기가 용도나 기능을 알 수 없었던 것과 달리 은야얀가 석기는 석기의 마모 형태와, 같이 발굴된 동물 뼈 등을 토대로 다양한 동식물 음식 재료를 다듬고 골수를 빼내는 데 이용했던 것으로 분석됐다.
논문 수석저자인 미국자연사박물관 인류기원 관장 릭 포츠 박사는 "이런 석기는 코끼리 어금니나 사자 송곳니보다 더 잘 으깨고 자를 수 있다"면서 "올도완 석기는 인체 밖에 새로운 치아 세트를 갑자기 갖게된 것과 같은 것으로, 인류의 조상들에게 아프리카 사바나의 새로운 음식에 대한 문을 열어줬다"고 의미를 설명했다.
케냐 투르카나호 서쪽 '로메크위3' 유적 발굴장에서 약 330만 년 전 것으로 추정되는 석기가 발견되기는 했으나 올도완 석기처럼 돌망치와 석핵을 양손에 쥐고 박편을 떼는 등의 정교하고 체계적인 제작기술은 갖추지 못했던 것으로 분석됐다.
올도완 석기 기술은 아프리카는 물론 오늘날의 유럽과 중국 등지로 퍼져나갔으며 약 170만 년 전 아슐 문화의 주먹도끼가 출현하기 전까지 의미 있는 변화 없이 계속 유지됐다.
연구팀은 은야얀가 유적에서 하마 3마리 이상의 뼈 화석을 발굴했는데, 이 중 한 마리의 갈비뼈 파편에서 깊이 잘린 흔적이, 다른 개체의 정강이뼈에서는 네 줄로 나란히 짧게 잘린 흔적이 발견하는 등 도살 증거가 나왔다.
영양 뼈에서는 박편으로 살을 떼고 돌망치로 으깨 골수를 빼낸 흔적도 발견됐다.
연구팀은 올도완 석기를 만든 주인공들이 이후에도 200만년 가량 불을 이용하지 못한 점을 고려할 때 사냥한 하마 고기를 날 것으로 먹으면서 씹기 좋게 돌로 다져 타르타르 형태로 만들어 먹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플러머 박사는 "이번에 발굴된 석기는 가장 오래된 올도완 석기가 아니라 해도 가장 오래된 축에 속한다"면서 "지금까지 여겨진 것보다 더 일찍 널리 이용됐다는 점과 함께 다양한 동식물 조직을 처리하는데 이용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고 했다.
eomn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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