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결론 "한은, 성장률 낮추면서 금리만 올리기 어려울 것"
인상론 "한미 금리차 역대최대 1.75%p 가능성…이미 역대최대 채권 순유출"
금통위원 '3대3'이면 이창용 총재가 결단
(서울=연합뉴스) 신호경 민선희 기자 = 최근 정부 쪽에서 물가보다 경기를 더 강조하는 것으로 해석될만한 언급이 나오면서, 한국은행도 오는 23일 기준금리 동결로 보조(步調)를 맞출지 주목된다.
한은은 같은 날 새 경제 전망에서 올해 성장률을 낮출 것으로 예상되는데, 경기 전망을 더 어둡게 보면서 기준금리를 올리는 '모순'적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하지만 1.25%포인트(p)까지 벌어진 미국과의 금리 격차와 그에 따른 자금 유출 우려, 공공요금 중심의 물가 상승세 등을 고려하면 여전히 0.25%포인트 추가 인상 가능성도 작지 않다.
◇ 추 부총리 "경기 문제도 신경써야"…'독립적' 한은에 영향 미칠까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앞서 10일 편집인협회 월례포럼에서 "물가 안정 기조를 확고히 해나가되 이제 서서히 경기 문제도 신경 써야 하는 상황으로 점점 가게 된다"며 "만약 물가 안정 기조가 확고해지면 모든 정책 기조를 경기 쪽으로 턴(turn·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본적으로 물가와 경기를 모두 고려한 정책을 강조한 발언이지만, '경기를 본격적으로 챙겨야 할 시점이 임박했다'는 일종의 위기의식이 더 뚜렷하게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앞서 지난해 12월 19일 추 부총리가 '2023년도 경제정책방향 당정협의회' 모두 발언에서 "당분간 물가 안정에 중점을 두는 가운데 금융, 기업, 부동산 관련 리스크, 경기 등 거시경제 상황을 종합 고려한 신축적 정책 조합을 통해 거시경제를 안정적으로 운영하겠다"고 말한 것과 비교해도 경기가 우선순위에서 좀 더 앞으로 당겨지는 분위기다.
하지만 실제로 정부의 정책 초점이 물가에서 경기로 옮겨졌다고 해도, 공식적으로는 한국은행 통화정책에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없다.
이창용 총재도 취임 후 여러 차례 "한은의 통화정책이 한국 정부로부터는 독립했다.(하지만 미국 연방준비제도로부터는 아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한은 총재가 정부 인사들과 공식·비공식 석상에서 견해를 나눌 수는 있지만, 통화정책에 대한 정부의 공식 소통 경로는 금통위 회의에 정부 인사가 참석해 의견을 내는 '열석발언'(列席發言) 정도다. 하지만 이마저 지난 2014년 이후 실제로 이뤄진 사례가 없다.
다만 한은 일각에서도 "금리 정책 효과는 바로 나타나는 게 아니라 시차를 두고 쭉 나타난다"거나, "물가 수치는 확연히 지금 걱정하는 것보다 좋아질 것이다. 하반기에는 3%대로 떨어질 것"이라는 추 부총리의 발언에 주목하고 있다.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일곱 번이나 연속으로 기준금리를 올렸으니 이제 그 효과를 시간을 두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 '1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5.2%로 다시 올랐지만, 큰 줄기의 하락 추세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는 진단 또는 조언일 수 있기 때문이다.
◇ 일부 금통위원들도 "금리 인상, 본격적으로 실물경기에 영향"
한은은 일단 지난달 13일 금융통화위원회(이하 금통위) 통화정책방향 회의 당시까지는 경기나 성장보다는 물가를 더 앞세웠다.
금통위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추가 인상한 뒤 "국내 경제의 성장률이 낮아지겠지만, 물가가 목표 수준을 크게 상회하는 높은 오름세를 지속할 것으로 예상되므로 물가 안정에 중점을 두고 긴축 기조를 이어나갈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5%대에서 내려오지 않는 상황에서 제1 목표와 임무가 '물가 관리'인 한은으로서 당연한 정책 기조지만, 금통위 역시 자칫 무리한 금리 인상이 급격한 경기 침체의 원인으로 지목될 가능성에 부담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이미 1월 금통위 회의 당시 한 위원은 "금융 여건이 충분히 긴축적 영역에 진입한데다, 올해 들어 실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본격화할 것"이라고 경고했고, 한 위원도 "실질금리 상승에 따른 경기 부진과 금융안정 리스크 측면의 부담을 고려해 추가 인상 여부를 신중히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창용 총재 역시 올해 신년사에서 "금리 인상 영향이 본격적으로 나타나 물가·경기·금융간 상충 가능성도 커질 것"이라고 걱정하기도 했다.
더구나 오는 23일 금통위 통화정책방향 회의에서 한은이 기존 성장률 전망치(1.7%)를 하향 조정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기준금리 동결론의 근거로 거론된다.
이 총재는 지난달 0.25%포인트 인상 직후 간담회에서 "올해 성장률을 작년 11월에는 1.7%로 봤는데 한 달 조금 넘었지만, 그사이 일어난 여러 지표를 볼 때 성장률이 그보다 낮아질 가능성이 커질 것 같다"며 "수출 부진이나 국제 경제 둔화 등을 고려할 때 올해 상반기는 어려운 시기가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동결론자들은 한은이 성장에 대한 눈높이를 낮추면서도 동시에 경기 침체를 더 부추길 수 있는 추가 금리 인상을 단행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 1월 외국인 채권투자 순유출 '역대 최대'…동결하면 한미 금리차 최대 1.75%p 가능성
하지만 23일 한은이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더 올린다고 해도, 인상의 명분 역시 충분하다.
우선 미국과의 금리 역전 폭이 사상 최대 기록을 눈앞에 두고 있다.
지난 1일(현지시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예상대로 기준금리 목표 범위를 4.25∼4.50%에서 4.50∼4.75%로 0.25%포인트 올렸고, 한국(3.50%)과 미국의 격차는 최대 1.25%포인트로 벌어졌다. 1.25%포인트는 2000년 10월 1.50%포인트 이후 가장 큰 금리 역전 폭이다.
더구나 제롬 파월 의장이 "두어 번(couple)의 금리 인상이 더 필요할 것"이라고 밝힌 만큼, 미국의 기준금리는 최종적으로 5.25%에 이를 가능성이 있다.
만약 한은이 기준금리를 현재 수준(3.50%)으로 유지하면 격차는 역대 최대 수준인 1.75%포인트로 커지고, 한국 경제는 상당 기간 외국인 자금 유출과 원화 절하(원/달러 환율 상승) 압력을 받게 된다.
지난 1월 외국인은 이미 국내 채권을 6조5천억원(52억9천만달러) 넘게 팔아치웠다.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00년 이후 역대 최대 규모의 외국인 채권투자 자금 순유출이다.
인플레이션(물가상승) 불씨도 아직 살아있다.
올해 1월 소비자물가는 작년 같은 달보다 5.2% 올랐다. 작년 5월(5.4%) 이후 9개월째 5%를 웃돌 뿐 아니라, 최근의 물가상승 둔화세에서 벗어나 오히려 0.2%포인트 반등했다.
앞으로도 교통 등 공공요금 줄인상이 예정된 만큼 한은과 정부의 기대처럼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빠르게 떨어지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만약 23일 회의에서 금통위원들의 기준금리 인상과 동결 의견이 '3대 3'으로 갈릴 경우, 결국 이 총재가 결단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다.
통상적으로 한은 총재는 금통위 의장으로서 개인 의견을 개진하지 않지만, 견해가 반으로 갈리면 캐스팅보트 역할을 한다.
shk999@yna.co.kr, ss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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