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CE 회의 참석 러 대표단에 비자…러 하원 부의장 등 의원 15명 포함
유럽·우크라 반발 서한…美는 "비자 발급 결정은 오스트리아 몫"
(서울=연합뉴스) 오진송 기자 = 중립국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오스트리아가 서방의 제재를 받는 러시아 인사들에게 비자를 발급해준 사실이 드러나면서 서방의 비난이 거세지고 있다.
12일(현지시간) AP통신에 따르면 오스트리아 정부는 오는 23∼24일 수도 빈에서 열리는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회의에 참석할 예정인 러시아 의원 15명 등 러시아 대표단에 대한 비자 발급을 승인했다.
이 대표단에는 표토르 톨스토이 러시아 하원(국가 두마) 부의장과 레오니드 슬루츠키 하원의원도 포함됐다.
이에 OSCE 회원국인 프랑스, 캐나다, 영국, 폴란드, 우크라이나 등 20개국 출신 대표 81명은 오스트리아 총리와 외무장관 등 정부 관계자들에게 서한을 보내 러시아 대표단의 OSCE 회의 참석을 금지할 것을 요청했다.
AP가 입수한 서한에 따르면 이들은 "러시아 의원들은 러시아 권력의 핵심으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매일 저지르는 범죄와 연루돼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며 "진실한 대화와 반전(反戰) 논의를 위해 창설된 기구에 이들이 설 자리는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OSCE는 미국, 프랑스, 독일, 영국,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 유럽과 북미, 중앙아시아 57개국이 참여하는 안보 협력 기구다. 이 기구는 냉전 시기인 1975년에 동서 간 대화 증진과 인권 보호 등을 논의하기 위해 창설됐다.
다만 러시아 인사들에 대한 제재에 앞장선 미국 대표단은 이 서한에 서명하지 않았다고 AP는 전했다.
마이클 카펜터 OSCE 주재 미국 대사는 10일 취재진에게 "러시아 대표단은 서방 국가를 여행할 자격이 없다"면서도 "그러나 그들의 비자를 허가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은 오스트리아 정부의 몫"이라고 말했다.
오스트리아 정부 관계자들은 이 서한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다만 알렉산더 샬렌베르크 오스트리아 외교장관은 지난 5일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잔인한 공격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와의 의사소통 채널을 열어두는 것은 중요하다"며 러시아 대표단에 대한 비자 발급 결정을 옹호한 바 있다.
오스트리아 외무부도 "오스트리아는 OSCE 회의 주최국으로서 회의 참가를 원하는 회원국 대표단에 비자를 내줄 법적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지난 1995년 유럽연합(EU) 회원국으로 가입한 오스트리아는 작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직후 러시아를 규탄하고 러시아에 대한 EU의 제재에 동참하면서도, 러시아와 외교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밝혀왔다.
오스트리아는 또 작년 5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을 신청하며 중립국 지위를 포기한 핀란드와 스웨덴과 달리 1955년에 채택한 군사적 중립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오스트리아 정부는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 인도주의적 지원을 하면서도 무기 지원은 하지 않았다.
카를 네함머 오스트리아 총리는 작년 4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종전 협상을 하기 위해 모스크바를 방문했으나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한 바 있다.
네함머 총리는 개전 이후 푸틴 대통령과 직접 만난 최초이자 유일한 EU 회원국 지도자라고 AP는 설명했다.
오스트리아 여론도 중립국 지위를 유지하는 것을 지지하고 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 사립대학에서 국제법을 연구하는 랄프 야니크는 "오스트리아의 중립성이 여전히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며 "나토에 가입하는 것이 다른 선택지가 될 수 있지만, 오스트리아 정치인들은 대다수의 국민이 이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매우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우크라이나전을 계기로 오스트리아의 외교정책을 재평가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보수 성향의 국민당 출신인 베르너 파스라벤트 전 오스트리아 국방장관은 "냉전 종식과 오스트리아의 EU 가입으로 오스트리아는 중립국의 기능을 이미 상실했다"고 평가했다.
dind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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