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AI 과학자 92%가 남성, 여성 진출 저해해 AI 알고리즘에도 반영 위험
(서울=연합뉴스) 엄남석 기자 = 지난 100년간 영화 속에 묘사된 인공지능(AI) 관련 인물이 남성에 편향되면서 위험한 문화적 고정관념을 형성해 앞으로 AI가 펼쳐갈 미래 세계에서 여성차별 구조가 더 심화할 수 있다는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런 문화적 고정 관념이 여성의 직종 선택이나 기업의 채용 과정에서 여성의 진입을 저해하고 궁극에는 미래 세계를 설계하는 AI 알고리즘에 성 편견이 스며들게 할 위험이 크다는 것이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 따르면 이 대학 '리버흄 미래지능 센터'(LCFI) 연구진은 영화 속 AI 관련 인물 설정과 AI 산업의 성비 등을 분석한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대중의 과학 이해(Public Understanding of Science)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1920년부터 2020년까지 영화 중 AI 관련 내용이 나오는 총 142편의 영화에서 AI 관련 인물 116명을 추려내 분석했다.
그 결과, 92%가 남성으로 압도적으로 많았고 여성은 과학자 8명과 최고경영자(CEO) 1명 등 9명에 그쳤다. 그나마 절반은 남성 과학자나 엔지니어 보조나 부하로 그려졌다.
여성이 AI를 만드는 과학자로 등장한 것은 1997년에 개봉한 코미디 영화 '오스틴 파워 제로'(Austin Powers: International Man of Mystery)에서 악당 이블 박사를 돕는 심복 역할의 프라우 파비시나가 처음인 것으로 제시됐다.
연구팀은 AI를 독신 천재 남성의 산물이라는 문화적 인식을 갖게 하는 대표적인 영화로 '아이언맨'(Iron Man)과 '엑스 마키나'(Ex Machina)를 꼽았다.
영화 속 AI 과학자 중 3분의 1(37명)이 천재로 그려졌는데 이중 여성은 단 한 명에 불과했다.
연구팀은 모든 연령층에서 비상한 능력을 갖춘 사람을 남성과 결부 짓는 편견을 가졌다는 점을 앞선 연구에서 제시한 바 있는데, 천재로 묘사돼온 AI 과학자는 여성이 이 직종에 적합하지 않다는 생각을 심어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논문 공동 저자인 스티븐 케이브 박사는 "천재는 백인 엘리트 남성이 형성한 성차별적, 인종차별적 지능 개념에 기초한 생각으로, 성 중립적이 아니다"라면서 "일론 머스크 등과 같은 영향력 있는 일부 과학기술 전문가들은 아이언맨 등 영화 속 인물에서 끌어온 천재적 모습을 의도적으로 구축하고 있다"고 했다.
연구팀은 영화 속 AI 남성 과학자나 엔지니어들이 남성 중심의 회사 또는 군대에서 자신을 닮거나 죽은 연인을 되살리고, 복종하는 여성 AI를 만들어냄으로써 압도적인 남성 중심의 AI 관련 영화를 더 악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연구팀은 현재 AI 관련 직종에 종사하는 여성은 약 22%로, 과학과 기술, 공학, 의학(STEM) 분야 여성 종사자 39%보다도 훨씬 낮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는 한 산업의 성 불평등을 넘어 과거 기술에서 보아왔듯이 여성을 차별하는 불공정하고 위험한 AI 상품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연구팀은 경고했다.
연구팀은 특히 STEM 분야에 종사하는 여성 3분의 2 가까이가 TV 드라마 'X파일'(The X Files)의 다나 스컬리 박사를 초기 롤모델로 삼았다는 점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를 제시하며, 영화나 드라마 속 묘사가 현실 세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의문을 일축했다.
논문 공동저자 캔타 디할 박사는 "AI 산업의 성 불평등은 조직적이며 만연해 있다"고 지적하면서 "주류 영화가 AI 관련 직종에 누가 적합한지를 제시하는 대단히 영향력 있는 문화적 고정관념의 발원지이자 증폭기"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런 고정관념이 인공지능 시대로 진입할 때 스스로 이행하는 자기충족 예언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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