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P, 에르도안 정권 주도한 정실 자본주의 조명
지진대 위 난개발 파티 벌이며 권위주의 가속
향후 대응에 따라 올해 5월 대선결과 결정될 듯
(서울=연합뉴스) 김성진 기자 = 튀르키예 강진으로 에르도안 정권의 정실 자본주의 폐해가 드러났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13일(현지시간) 미국 외교전문매체 포린폴리시(FP) 보도에 따르면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은 1999년 튀르키예 북서부 강진 당시 정부의 부실대응에 대한 비판론을 등에 업고 국가 지도자가 됐다. 당시 지진 규모는 이번 강진 규모 7.8과 비슷하다.
그가 창당한 정의개발당(AKP)은 그러나 지난 20여 년간 집권당과 가까운 재계 인사들에게 건설 붐의 혜택을 나눠주는 데 골몰했다. 전형적 정경유착이었다.
그 사이 에르도안 정부가 내세웠던 내진 설계 준수 공약은 사실상 휴짓조각이 됐다. 지난 2008년 에르도안 정부는 도시계획 구역 사면법을 통과시켜 관련 인허가 없이 지어진 건물에도 철거를 면하는 면죄부를 줬다.
24년 전 강진 후 내진형 건물을 세우겠다면서 거둔 소위 '지진세'가 어디에 쓰였는지 오리무중이다.
이번 지진으로 최소 100만 명이 거리에 나앉았다. 지진 피해를 본 건물만 2만5천 채에 근접한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강진 발생 사흘만인 지난 8일 피해 현장을 방문해서 100년 만에 최악이라는 이번 강진은 '운명의 장난'이라는 식으로 말했다. 정부로서도 어쩔 도리가 없는 천재지변이었다고 말해 면피성 발언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오랫동안 대규모 지진 발생 위험성을 경고해왔다.
에르도안 정부는 20년 사이 새로운 다리와 상가 몰, 모스크를 건설하고 고층 빌딩들을 세웠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지금의 사태를 부른 값비싼 대가 속에 급조됐다는 것을 이번 강진은 여실하게 보여준 것일 수 있다고 FP는 분석했다.
그동안 에르도안 정권이 독재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대통령 권한 강화에 골몰하다 보니 정작 체제가 위기에 발 빠르게 대처하지 못할 정도로 경화됐다.
실례로 구조대가 피해 현장에 늑장 출동하는가 하면 1999년 지진 당시 그나마 신속히 배치됐던 군을 피해 현장 복구에 동원하는 데만 이번에는 이틀이 걸렸다.
이에 따라 에르도안 정권에 대한 민심도 급속하게 이반되고 있다.
그러자 정부는 부실시공과 관련해 100명이 넘는 하도급 업자 등 무더기 체포에 나섰다. 지금까지 113명에 대한 체포영장이 발부돼 12명이 구금됐다.
그러나 잔챙이들만 잡아넣고 인허가 관리와 건설대기업은 손도 못 대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5월 14일로 다가온 대선일을 앞두고 수도 앙카라의 정치 분석가 유수프 에림은 지진이 이전의 모든 선거 결과를 사실상 백지상태로 만들었다면서 앞으로 3개월 간 여야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대선의 향배가 결정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진이 강타한 10개 주 가운데 6개가 여당 AKP의 텃밭이었다.
일각에선 여론이 악화한 가운데 에르도안 정권이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대선 연기를 꾀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정부가 지진 대응을 명분으로 대선을 연기하더라도 1개월 이상 미룰 수 는 없다. 지진 후 선포된 비상사태령은 헌법상 대선 연기 요건인 전시상태가 아니기 때문이다.
에르도안 정권은 화려한 인프라 건설을 치적으로 내세웠지만, 이번 지진에 빛이 바랬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민족주의를 표방하면서 국명도 서구 시각이 반영된 터키 대신 튀르키예로 바꿨다. 그러나 지진 후 국제사회 원조가 많이 들어와 이것도 무색해졌다.
독일 베를린에 있는 터키 응용연구소의 시넴 아다르는 FP에 "지진은 (에르도안 정권하에서 벌어진) 경제 위기처럼 그 자체로 에르도안 정권에 종지부를 찍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여권의 정통성은 분명히 약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sungj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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