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시위 이어 '백발시위'…중국 퇴직자들 뿔난 이유는

입력 2023-02-16 12:05   수정 2023-02-16 17:28

백지시위 이어 '백발시위'…중국 퇴직자들 뿔난 이유는
'의보개혁' 결과 월정액 의료보조금 삭감되자 우한·다롄서 시위
불만있어도 '집단행동' 자제했던 중국사회 분위기 변화 주목


(베이징=연합뉴스) 조준형 특파원 = 중국에서 작년 고강도 제로 코로나 정책에 반대한 '백지시위'에 이어 은퇴한 고령자들의 '백발시위'가 일부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다.
최근 후베이성 우한과 랴오닝성 다롄에서 발생한 퇴직자들의 의료보조금 삭감 반대 시위 이야기다.
우한에서는 지난 8일 시 정부 청사 앞에서 수천 명이 몰려들어 항의한 데 이어 일주일 후인 15일에는 현지 명소인 중산공원 앞에서 다시 시위가 열렸다. 다롄의 경우 15일 시 정부 건물이 몰려있는 런민(人民) 광장에서 첫 시위가 벌어졌다.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영상을 보면 참가자들은 "의료보조금을 돌려달라"는 등의 구호를 외쳤고, 인터내셔널가를 부르기도 했다.
시위 참가자들이 문제 삼는 것은 개인별로 월 260위안(약 4만9천 원·우한 기준)가량 받던 의료 보조금이 최근 83위안으로 대폭 깎인 것이다.
'의료보험 개혁' 차원에서 매달 개인 계좌로 직접 제공하는 의료보조금은 줄이고, 병원 치료를 받은 뒤 청구할 수 있는 금액은 늘리는 방향으로 제도 변화가 있었는데, 일부의 불만이 표출된 것이다.
중국에는 개인별로 일정액을 지급하는 의료보조금 제도가 존재한다.
중국 의료보험 제도가 설립된 1990년대에는 보험료 청구와 지급 관련 행정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개인 계좌로 일정액을 이체하면, 개인이 의보 카드로 약을 사거나 진료소에서 진료를 받는 데 쓸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약국에서 생활필수품을 팔고, 약을 산 것처럼 처리하는 등의 문제가 생기면서 의보 기금이 정말로 '아픈 사람'을 위해 쓰이도록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됐다.
그 결과 개인에게 직접 제공되는 현금성 의료 보조금은 줄이고, 입원 치료 등을 받은 경우 그 비용을 더 보전해 주는 방향으로 의보 개혁이 추진되고 있다.
우한의 경우 지난 2월부터 변화한 제도가 시행되기 시작했는데, 퇴직 후 월급이 끊긴 상황에서 의료보조금을 '양로 보조금'으로 생각해온 고령자들의 불만이 표출된 것이다.
즉, 현역으로 일하던 시절 납부한 의료보험료를 의료보조금으로 돌려받는다고 생각해온 고령자들 입장에서는 복잡한 제도 개혁의 잠재적 혜택은 멀게 느껴지고, 줄어든 보조금은 가깝게 느껴지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3년간 '정기적 전수 PCR(유전자증폭) 검사'로 대표되는 고강도 제로 코로나 정책을 지탱하는데 의료 관련 재정이 과다 투입된 탓에 당국이 의료 보조금을 줄인 것 아니냐는 의심이 확산한 것도 원인이었다.
이에 대해 중국 국가의료보장국은 최근 소셜미디어 위챗 공식 채널을 통해 "의보 개혁은 자금 배분 방식을 바꾼 것일 뿐"이라며 "작년 하반기의 대규모 (무료) PCR 검사와 의보 기금과는 조금도 관계가 없으며, 지방정부가 (무료) PCR 검사 비용을 부담하고 있다"고 밝혔다.
결국 변화한 정책이 일선 주민들에게 충분히 설명되지 못했거나, '제로 코로나 3년'의 우여곡절을 거치며 정부에 대한 주민들의 신뢰가 떨어진 것이 이번 시위의 배경으로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도 가능해 보인다.
작년 백지시위 이후 중국 정부가 결과적으로 제로 코로나 정책을 접는 것을 본 중국 사회의 변화가 투영되고 있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그동안 불만이 있어도 집단으로 목소리를 낼 엄두를 내지 못했지만, 이제는 단결해서 목소리를 내면 소기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중국인들이 늘어났다는 분석이다.

jhcho@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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