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에 떠내려가는 두살배기 딸 보며 가슴 친 뉴질랜드 엄마

입력 2023-02-18 07:57   수정 2023-02-18 09:01

홍수에 떠내려가는 두살배기 딸 보며 가슴 친 뉴질랜드 엄마


(오클랜드=연합뉴스) 고한성 통신원 = "급류가 뒤에서 덮쳐 어깨 위에 태우고 있던 아이비(딸)를 놓치며 넘어졌는데 물속에 잠겼다가 일어나보니 딸은 벌써 저만큼 떠내려가고..."
지난 12일부터 14일까지 뉴질랜드 북섬을 강타한 사이클론으로 어린 딸을 잃은 뉴질랜드의 한 엄마가 가슴을 도려내는 아픔으로 털어놓은 딸과의 마지막 순간이다.
뉴질랜드 매체 스터프는 호크스베이 농촌지역에 사는 엘라 콜린스가 비극의 주인공이라며 지난 14일 새벽 홍수로 집이 물에 잠기면서 밖으로 대피하다 두 살배기 딸 아이비를 잃었다고 17일 전했다.
엘라는 전날 사이클론 가브리엘로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지만 큰 걱정 없이 남편 잭과 함께 이모젠(4)과 아이비 두 딸을 재우고 잠자리에 들었다가 이튿날 새벽 4시쯤 물소리에 잠이 깼다.
처음에는 수도에 이상이 생긴 것으로 생각했으나 곧 사이클론이 생각났고 지붕이 새고 있는 건 아닌가 싶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놀랍게도 바닥에 발을 내딛자 발목까지 차가운 물이 차올랐다.
엘라는 "물이 쏟아져 들어오는 소리도 커다랗게 들렸다"며 침실 밖으로 나와서 보자 고양이가 출입하는 작은 문이 수문처럼 열려 물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고 밝혔다.
엘라는 허겁지겁 바닥에 있던 세간들을 젖지 않도록 높은 데 올려놓다가 두 딸이 잠든 방으로 달려갔다.
두 딸은 아무것도 모르고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물이 빠른 속도로 집안에 차오르면서 남편은 밖으로 빨리 대피해야 한다며 준비를 서둘렀다. 엘라도 일부 생활필수품을 가방에 챙겼다.
물은 30분 만에 1m 가까이 차올랐다.
잭은 곤히 자는 두 딸을 깨워 '우리 이제 모험을 떠나야 한다'며 이모젠을 자신의 어깨에 둘러업고 엘라는 작은딸 아이비를 업었다.
현관문을 열고 나오자 미명 속에 비는 계속 쏟아지고 있었고 물은 가슴께까지 닿았다.
계획은 두 집 건너 있는 2층짜리 이웃집으로 가는 것이었다.
더듬더듬 물속을 걷고 있을 때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나면서 엄청난 급류가 몰려왔다.

잭은 오던 길을 뒤돌아가서 필사적으로 길가의 울타리 나무를 붙잡았으나 엘라는 역부족이었다.
엘라는 급류가 뒤에서 자신을 덮치자 어깨에 태우고 있던 아이비를 놓치고 넘어지면서 물속에 잠겼다.
허우적거리다 겨우 몸을 일으켰을 때 아이비는 벌써 저만치 물살에 휩쓸려가고 있었다.
잭이 물속으로 몸을 날렸으나 물살이 워낙 빨라 어림도 없었다.
남편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으나 그것도 곧 성난 급류에 휩쓸려 아스라이 사라졌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알아차리기 힘들 만큼 순식간의 일이었다.
눈앞이 캄캄해진 엘라가 정신없이 이모젠에게 달려갔을 때 이모젠은 나뭇가지에 긁힌 자국이 온몸에 가득하고 겁에 질려 있었다.
그러나 머뭇거릴 틈이 없었다. 거칠게 밀려오는 급류를 피해 어디론가 대피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엘라는 잭과 함께 이모젠을 데리고 무조건 가까운 이웃집으로 들어갔다. 새벽 5시 30분쯤이었다.
막내를 잃은 세 식구는 집주인 부부와 함께 미끄러운 지붕에 구멍을 뚫고 안으로 들어가 있다가 이날 오후가 돼서야 헬기에 의해 구조됐다.
무섭고 힘든 시간에도 이모젠은 울지 않고 견뎌줬다.
구조대원들이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밝고 쾌활했던 아이비의 시신을 찾았다고 알려온 것은 이튿날 아침이었다.
엘라는 아이비를 잃은 아픔은 넘을 수 없는 산인지도 모른다며 "하지만 우리에게는 서로 기댈 수 있는 가족이 있다. 남편 잭과 딸 이모젠이 있고 8월에는 다시 아기가 태어날 예정이다. 서로 의지할 수 있는 친구들과 이웃들도 있다"고 말했다.
뉴질랜드 정부 당국은 이번 사이클론으로 피해가 가장 심한 지역 중 하나인 호크스베이 등 뉴질랜드 북섬 여러 지역에서 18일 오전까지 9명의 사망자 나온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koh@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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