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피해 109조원…공업지대 시설·노동력 중대타격
살인적 인플레로 위기…피해복구에 돌파구 '언감생심'
(서울=연합뉴스) 전명훈 기자 = 안 그래도 높은 물가 등으로 신음하던 튀르키예 경제가 이번 대지진 탓에 더욱 침체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튀르키예 기업연맹은 지난 6일 튀르키예를 강타한 규모 7.8, 7.5 연쇄 강진의 경제적 피해액을 840억 달러(약 109조원)로 예측했다. 1999년 이즈미르 대지진 당시의 피해액을 이번 지진 피해에 대입해 추산한 결과다.
이번 지진의 사망자 수는 튀르키예에서만 약 4만명에 이르고, 아직도 하루가 다르게 늘고 있다. 지진으로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이재민도 200만 명에 달한다. 경제적으로 봤을 때 튀르키예가 노동력을 상당 부분 잃어버린 셈이다.
특히 이번 지진 피해가 가장 심각한 지역인 카흐라만마라슈는 튀르키예의 공산품 수출산업의 핵심기지였다. 이 지역에서는 서방 브랜드의 기성품 의류, 보석, 주방기구, 철강 등을 활발하게 생산해 유럽 등으로 수출해왔다. 이런 일자리를 찾아 사람들도 모여들었다.
문제는 지진 이전부터 경제난에 허덕이던 튀르키예가 수출로 활로를 찾으려 했다는 점이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물가가 오르는데도 금리를 내렸다. 통상의 경제 상식과는 정반대 행보였다. 리라화 가치를 낮춰 튀르키예 제품의 가격 경쟁력을 높이고, 수출을 늘려 이득을 보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뜻대로 풀리지는 않았다. 금리인하는 2021년 말 터키 리라화 폭락을 불러왔다. 작년 10월에는 물가 상승률이 85%에 달했다.
화폐 가치가 떨어지자 투자자들의 리라화 투매에도 가속이 붙었다. 결국 튀르키예 중앙은행은 리라화 가치를 떠받치겠다며 1천억 달러를 투입해야 했고, 이는 국고에 큰 부담이 됐다.
그나마 러시아와 중동 국가 등에서 유입된 외화와 코로나19 팬데믹이 사그라든 뒤 부활한 관광 수요 등이 경제 충격의 완충 작용을 한 덕에 튀르키예 경제가 어느 정도 유지되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 지진으로 수출 중심기지의 공장과 사람 모두 잃어버릴 처지가 되면서 핵심 경제 축이 사실상 제 기능을 잃게 됐다.
금속 주방용품 제조사 대표인 미카일 우틀루 카흐라만마라슈 기업협회장은 WSJ에 "사람들을 잃지 않으려면 일자리, 보금자리 문제를 최대한 빨리 해결해야 한다. 한 번 떠난 사람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고 발을 동동 굴렀다.
우틀루 회장이 경영하는 회사에서도 직원 20명이 숨졌고 무너진 공장의 피해액도 600만 달러(78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튀르키예 정부가 기업의 피해를 이른 시일 내에 온전히 보전해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WSJ에 따르면 국내외에서 복구를 위한 성금이 모이고 있긴 하지만, 대규모 경제 피해를 메꾸기에는 역부족이다.
지진 이재민들에게 1년 내에 주거지를 제공하겠다는 에르도안 대통령의 약속에도 의심하는 시각이 더 많다.
카흐라만마라슈 인근에서 포장용 판지 제작업체를 운영하는 이스마일 디즈덱 사장은 WSJ에 "도시 한 군데만 지진 피해를 본 것이 아니다. 국가의 자원은 한정돼 있다"고 말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1999년 이즈미르 대지진의 여파가 이어지던 2003년 처음 집권했다. 20년 뒤인 올해 그는 대통령 연임을 노리고 있다. 그러나 에르도안 정부의 지진 대처가 느리고 조직적이지 않다는 비판이 제기된다고 WSJ는 전했다.
'지진 책임론' 피하기?…튀르키예, '공포조성자' 대거 체포/ 연합뉴스 (Yonhap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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