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뇌까지 암세포…고향마을서 '마지막 순간' 대기
철인처럼 암투병 이어온 98세 미 최장수 전직 대통령
냉전풍파 겪은 세계원로…한반도 문제로 한국과도 깊은 인연
(워싱턴·서울=연합뉴스) 강병철 특파원 전명훈 기자 = 암 투병 중이던 지미 카터(98) 전 대통령이 고향에서 가족에 둘러싸인 채 삶의 마지막을 준비하기로 했다.
카터 전 대통령이 이끌어온 인권단체 '카터센터'는 18일(현지시간) 성명에서 카터 전 대통령이 가정 호스피스 완화의료를 받기로 했다면서 "남은 시간을 가정에서 가족과 보내기로 했다"고 밝혔다.
조지아주 고향 마을 '플레인스'에서 여생을 보내겠다는 계획이다.
호스피스 완화의료는 암 환자 등 중증 말기 환자를 치료하기보다 고통을 경감해 삶의 질을 향상하는 데에 집중하는 의료서비스다.
카터 전 대통령은 흑색종(피부암 일종)이 간·뇌까지 전이된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카터 센터는 "가족과 의료진이 카터 전 대통령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있다"며 "이 기간 사생활을 존중해 주시길 요청한다"고 말했다.
작년 10월 98번째 생일을 맞이한 카터 전 대통령은 역대 미국 대통령 중 최장수 기록을 쓰고 있다.
1924년 플레인스에서 태어난 카터 전 대통령은 1960년 민주당 소속 주 상원의원에 당선되면서 정치인으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71년에는 주지사에 당선됐고 그 5년 뒤인 1976년 대선에서 제럴드 포드 전 대통령을 제치고 미국의 제39대 대통령 뽑혔다.
임기는 안팎으로 바람 잘 날이 거의 없었다.
미국 내에서는 석유파동의 여파로 치솟은 물가·실업률을 관리하느라 눈코 뜰 새가 없었다.
다뤄야 할 외교 문제도 적지 않았다.
1978년 '캠프데이비드 협정'은 카터 행정부의 대표적인 외교 성과로 꼽힌다. 카터 행정부가 중재한 이 협정으로 이집트 정부는 이스라엘을 독립된 국가로 인정했다. 이 협정은 수십 년 간 이어진 중동의 갈등을 억제하는 데 이바지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그의 연임 길을 막아선 것도 외교 문제였다.
1979년 주이란 미국 대사관에서 미국 외교관 66명이 인질로 붙잡히자 카터 정부는 이란과 단교하고 금수조치를 단행하며 즉각 보복 조치에 나섰다. 그러나 여론은 더욱 강경한 조치를 바랐다.
당시 외교관 인질 사태가 1년 넘게 이어지고, 이들을 구출하려던 미군 장병 8명이 사망하는 일까지 발생하자 지지율이 폭락했다. 이란은 후임인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취임하고서야 인질들을 풀어줬다.
우리나라와 인연도 깊다.
카터 전 대통령은 인권 문제를 이유로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며 박정희 정부와 각을 세웠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1979년 카터 전 대통령을 공식 초청해 성대한 환영 행사를 여는 등 대통령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공을 들여야 했다.
카터 전 대통령의 활동은 백악관을 떠난 후에도 계속됐다.
특히 1994년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 탈퇴를 선언한 '1차 북핵 위기' 때 직접 평양에서 김일성 주석과의 담판으로 갈등 해소의 결정적인 물꼬를 텄다.
이외에도 아이티, 보스니아 등 국제 분쟁 지역에서 평화적 해결책을 찾기 위해 외교력을 발휘했다. 이런 공로로 2002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카터 전 대통령은 오랜 기간 암과 싸웠다. 2015년에는 간암 발병 사실을 알린 지 7개월 만에 '완치'를 선언하기도 했다. 당시 실험적 단계였던 '면역 항암제'를 투여한 결과였다.
그러나 결국 피부암이 다시 발병하고, 다른 장기로 전이까지 되면서 호스피스 완화의료를 선택하게 됐다.
카터 전 대통령의 손자, 제이슨 카터 전 조지아주 상원의원은 이날 트위터에 "조부모를 어제 찾아뵀다"며 "두 분은 늘 평화로웠다. 늘 그렇듯 그 댁은 사랑으로 가득했다. 여러분의 따뜻한 말씀에 감사드린다"고 썼다.
카터 전 대통령과 그 부인 로슬린 카터는 2021년에 결혼 75주년을 맞이했다. 슬하엔 4자녀를 뒀다.
solec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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