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 최전선엔 총성·포성뿐…"전차 공격에 구사일생으로 목숨 건져"
"다른 한국인 의용군 대부분 귀국, 다른 부대에 1명 더 있다는 얘기 들어"
"3개월간 팀원 90% 사상 또는 전투 포기했지만…죽음 각오하고 싸운다"
(이스탄불=연합뉴스) 조성흠 특파원 = "최전방에는 더 이상 주민이 없어 들리는 소리라곤 총성과 포성뿐입니다. 드론이 뜨는 순간 휘파람 같은 바람 소리와 함께 포탄이 날아옵니다. 이 찰나의 순간에 집중해야 포탄의 방향을 짐작할 수 있죠."
우크라이나 국토방위군 국제여단 소속 한국인 의용군 김모(33) 팀장은 전쟁 1주년을 앞둔 22일(현지시간) 연합뉴스와의 화상 인터뷰를 통해 생사를 넘나드는 동부 최전선 상황을 전했다.
지난해 전쟁 초기 이근 전 대위 등 일부 한국인이 우크라이나에서 참전했다가 귀국한 적이 있으나, 전쟁이 발발한지 1년이 되는 현재도 한국인 의용군이 현지에서 활동 중인 사실이 이번에 새로 확인된 것이다.
다른 한국인 의용군 역시 대부분 귀국하고 현재는 자신 외에 다른 부대에 1명이 더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고 김 팀장은 전했다. 김 팀장을 포함해 최소 2명의 한국인 의용군이 전장에 남아 있다는 것이다.
김 팀장은 우크라이나 전쟁 1주년을 맞아 그 실상을 알리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호소하고 싶다며 인터뷰를 자청해 왔다.
특수전사령부와 국가정보원에서 9년 가까이 활동한 김 팀장은 해군 장교 입대를 준비하던 중 전쟁이 쉽사리 끝나지 않을 것 같고, 과거 한국이 받은 도움을 갚아야 한다는 생각에 지난해 4월부터 준비한 끝에 10월 말 우크라이나에 입국했다고 한다.
그는 인터뷰에서 "제 증조부는 일제 치하에서 독립운동을 했고, 조부는 한국전쟁에서 총상을 입었다"며 "당시 세계 각국의 지원이 있었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다. 우리가 이번 전쟁에 무관심하다면 나중에 제2의 한국전쟁이 벌어질 경우 어느 나라가 우리를 돕겠나"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저는 해외에서 비정규전 참전 경험까지 있다"며 "이런 제가 이 참혹한 전쟁을 외면한다면 남은 생을 스스로 떳떳하게 살 수 없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처럼 실전 경험과 의지를 갖춘 김 팀장에게도 우크라이나의 전장은 혹독하기 이를 데 없다. 특히 러시아군의 포격에 무방비로 노출된 평야 지역에서 보병 작전은 극도로 위험한 상황이다.
그는 "최전방에는 더 이상 주민이 없어 들리는 소리라곤 총성과 포성뿐"이라며 "장갑차를 타면 소리가 수 ㎞ 밖까지 들리기 때문에 멀리서부터 도보로 이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적의 경계를 피해 야간에 이동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지뢰와 부비트랩을 식별하기 어려워 병사들의 긴장은 최고조에 달한다.
포격으로 망가진 길과 땅바닥을 제대로 보지 못해 발목과 무릎에 큰 부상을 입는 경우가 많고, 여기에 사방으로 모자라 하늘의 드론까지 경계해야 하는 상황이 이 같은 어려움을 더욱 키운다.
그는 "전선에는 사실상 24시간 러시아군의 드론이 떠 있다"며 "드론이 머리 위에 뜨면 그 순간 포격이 온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전차포는 소리가 들리기도 전에 포탄이 날아오지만, 주로 보병들에게 쓰이는 박격포탄은 낙하하기 전 '휘유~' 하는 휘파람 소리가 난다고 그는 말했다.
이어 이 찰나의 순간에 집중해야 포탄이 자신에게 향하는지를 알 수 있다면서 "우리 쪽이다 싶으면 바로 흩어져 바닥에 엎드려야 한다"고 말했다.
게다가 드론이 계속해서 아군의 위치를 추적해 실시간으로 포병에게 전송하기 때문에 한 번 포격을 피했다고 안심할 수도 없다.
이런 박격포보다도 무서운 건 머리 위에서 수류탄과 대전차 로켓포탄을 떨어뜨리는 드론이다.
보통 소리가 먼저 들리는 포격과 달리 이들 드론이 떨구는 폭탄은 한순간이라도 경계를 소홀히 하면 영문도 모른 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온라인에선 우크라이나군이 이런 드론을 활용해 러시아군을 공격하는 영상이 많지만, 실제론 러시아군의 드론 전력이 우위라고 그는 말했다.
그는 "러시아군이 드론의 수량과 성능에서 모두 앞서고, 전파를 방해하는 전자전도 더욱 적극적으로 구사하고 있다"고 했다.
최근에는 자신 주변의 막사가 러시아군 자폭 드론의 공격으로 완전히 파괴돼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전했다.
사실상 폐가가 된 빈집을 임시로 활용한 전방 생활은 모든 것이 부족하고 열악한 형편이다.
전선 지역에 물과 전기, 가스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 화장실은 재래식으로 만들어 이용해야 하고, 샤워도 하지 못해 물티슈로 몸을 닦는 정도가 대부분이다.
게다가 자폭 드론 공격을 피하기 위해 철저히 밀폐된 실내에서 생활하다 보니 감기나 장염 등 전염병을 앓는 경우가 많다.
야전용 전투식량이 부족하고 음식 조리도 어렵기 때문에 빵이나 캔 음식, 단백질 파우더 등으로 끼니를 때우는 형편이다.
그나마 김 팀장이 소속된 특수작전팀은 휴대용 발전기와 침낭 등이 지급된 덕분에 어렵게나마 추위를 이겨낼 수 있다고 한다.
이런 극한 상황에서 수십 명에 달하는 김 팀장의 팀원들도 죽거나 다치고, 스스로 전투를 포기하면서 불과 3개월여 만에 전체 팀의 90%가 교체됐다.
김 팀장 역시 최근 전차포 공격을 받았으나 직격을 피하고 방탄 장구가 파편을 막아줘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다.
그는 "죽지 않은 게 정말 행운"이라며 "일부 팀원들은 부상으로 입원했다"고 말했다.
지금도 계속된 전투 스트레스에 따른 청각 이상과 신경 손상으로 병원 치료를 받고 있지만 당장 전투를 중단하고 귀국할 생각은 없다고 했다.
그는 "전선에서 다들 이 정도 부상은 달고 있다. 우크라이나에서도 많은 젊은이들이 자원 입대했다"며 "제게 삶이란 단순히 숨 쉬는 게 아니라 스스로 인정할 수 있게 의미있게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가족 중 형은 김 팀장의 참전 사실을 알고 있지만, 부모는 아직도 둘째 아들이 해군 장교로 입대한 줄로만 알고 있다.
김 팀장은 "걱정하실까봐 아직 알리지 않았지만, 이제는 아실 때도 된 것 같다. 적당한 때 말씀드리려 한다"고 했다.
여권법 위반으로 귀국 후 처벌받을 수 있다는 지적에는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온 만큼, 사형이 아닌 이상 처벌을 걱정하지 않는다"며 "저 자신이 불의를 외면할까 두려울 뿐"이라고 답했다.
jos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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