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병 굴려 3천억 번 프리고진의 '급발진'…"권력투쟁서 밀린듯"(종합)

입력 2023-02-22 16:15   수정 2023-02-23 06:40

용병 굴려 3천억 번 프리고진의 '급발진'…"권력투쟁서 밀린듯"(종합)
와그너 그룹 수장, 날선 발언 "군, 우리 와해하려…반역죄 해당"
"푸틴에 닿으려는 '절망의 몸짓'" 평가…푸틴 국정연설도 불참
FT "서방 제재에도 아프리카 등지에서 활발히 자원사업 벌여"


(서울=연합뉴스) 현윤경 김동호 기자 = 러시아 민간 용병업체 와그너그룹 수장이 최근 러시아 국방부를 향해 '반역'을 운운하며 날 선 비난을 쏟아내는 등 자제력을 잃은 모습을 보여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일각에서는 그가 우크라이나 전쟁 참전으로 권력의 핵심으로 부각됐지만 러시아 군부가 전쟁 전략을 재조정하면서 이제는 차츰 밀려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21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와그너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은 텔레그램 채널에 올린 음성 메시지에서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과 발레리 게라시모프 통합사령관이 용병들을 착취하고 와그너그룹을 와해하려고 한다고 비난했다.
그는 격앙된 목소리로 "와그너그룹을 파괴하려는 시도가 있었다"며 "반역죄로 처벌할 만한 일"이라고 외치는 등 화를 숨기지 못하는 모습도 보였다.
프리고진은 그 전날에도 일부 국방부 관리들이 자신에 대한 개인적인 반감을 이유로 와그너그룹에 대한 물자지원을 거부했고, 이 때문에 동부 격전지인 바흐무트에서 심각한 병력 손실을 봤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아울러 고위 관리들이 참호를 파는 데 필요한 특수 삽의 지원도 거부했다고 덧붙였다.
프리고진은 그러면서 군 고위 간부들이 "그들의 편의를 위해 사람들이 죽어도 된다는 결정을 내린다"고 비난하며 "와그너 전사들이 필요한 보급품이 부족한 가운데 파리처럼 죽어가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러시아 국방부는 성명을 내고 프리고진의 이 같은 주장을 일축했다.
국방부는 와그너 그룹을 거론하지는 않은 채 "군 당국은 전투병 보급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고 있다"며 "탄약부족과 관련해 돌격부대를 대변해 나온 것으로 추정되는 모든 진술은 전적으로 틀린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러시아 전투 부대 사이의 긴밀한 상호작용과 지원 체계 내부에 분열을 획책하는 시도는 비생산적이며 적만 이롭게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러시아 정부가 주관하는 각종 행사에서 음식을 공급하는 요식업체를 소유해 '푸틴의 요리사'로 불린 프리고진은 그동안 좀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진 이후엔 와그너 용병을 동부 전선에 투입해 일부 성과를 내면서 권력의 실세로 부상했다.
그러나 전훈을 누가 세웠는지를 두고 러시아 정규군과 다툼을 벌이는가 하면 무리한 전과자 특채를 밀어붙이는 등 튀는 행보로 지금은 크렘린 이너서클의 눈 밖에 났다는 분석이 나온다.
프리고진은 올해 들어 죄수들을 와그너 용병으로 채용했다가 논란이 일자 당국에 의해 제지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러시아 국방부는 앞서 와그너그룹 용병들이 상당수 무기와 보급품을 당국에 의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룹이 국방부의 통제 아래 있지 않다는 문제제기를 한 바 있다.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프리고진이 지난 48시간 동안 텔레그램에 올린 오디오 메시지는 쇼이구 국방장관과 게라시모프 통합사령관을 겨냥한 가장 직접적인 공격이라고 지적하면서, 이는 프리고진이 권력 다툼에서 밀려나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러시아 전쟁 구조(war mechanism)가 러시아군과 와그너그룹의 반목으로 시험대에 올랐다고도 진단했다.

로이터는 프리고진의 이같은 '급발진'이 "푸틴에게 (도움을 청하려) 닿기 위한 '절망의 몸짓'이라는 러시아 독립 정치분석기관 R.폴리틱 대표 타탸나 스타노바야의 평가를 전했다.
푸틴 대통령이 프리고진을 염두에 두고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그는 우크라이나 침공 1주년을 앞둔 21일 국정연설에서 '내부 갈등 종식'을 언급, 우크라이나 전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군부 내분을 인식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푸틴 대통령은 국정연설 자리에 모인 정치인과 군 간부들에게 "부처 간의 어떠한 반목, 형식주의, 오해, 다른 터무니없는 일들을 없애야 한다. 이를 특히 강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프리고진은 이날 푸틴의 국정연설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는 별도의 게시물에서 "너무 바빠서 국정연설을 보지 못했다. 따라서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평가할 수 없다"고 밝혔다.
미 시사 주간 뉴스위크는 개전 1주년을 앞두고 푸틴 대통령이 거행한 국정 연설에서 프리고진이 자리를 함께하지 않은 것이 눈길을 끌었다고 촌평했다.
한편,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날 프리고진이 지난 4년간 와그너 용병단 운영을 통해 2억5천만달러(약3천265억원)에 달하는 수익을 올렸다고 보도했다.
프리고진은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서방 제재에도 불구하고 와그너 그룹이 활동 중인 아프리카와 중동 국가에서 석유, 가스, 다이아몬드, 금 등 천연자원을 확보해 '에브로 폴리스', 'M 인베스트' 등 업체를 통해 자원사업을 이어왔다는 것이다.
FT는 "프리고진은 2016년 미국의 첫 제재를 받고 2021년 미 연방수사국(FBI) 지명수배 명단에 올랐지만, 와그너의 천연자원 사업은 멈추지 않았다"고 언급했다.
ykhyun14@yna.co.kr, dk@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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