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워싱턴대 강연…"완전비핵화 전제로 한 협상 비현실적"
"北붕괴론은 오판"…韓 자체 핵무장엔 "위험하고 어리석어"
美대학·한인단체 강연 뒤 독일 방문했다 6월 한국행 예정
(워싱턴=연합뉴스) 김동현 특파원 = 미국에 체류하고 있는 이낙연 전 국무총리는 미국과 중국이 한반도와 북핵 문제를 전략적 경쟁의 장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다.
이 전 총리는 21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 있는 조지워싱턴대 강연에서 "중국이 지도국가를 지향하고 있다면 동아시아 지역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 중 하나"라며 "지도국가가 아니라 북한의 이웃 국가로서도 북한의 핵무장을 제지하는 게 옳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이 북한, 중국, 러시아의 연대 움직임에 대처해서 한미일 공조를 강화하려는 것은 옳은 방향이지만 미국이나 중국이 한반도를 미중 경쟁의 최전선으로 만들려고 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고 주문했다.
이어 "한반도는 7천만 명 이상의 사람이 사는 곳"이라며 "한반도가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큰 나라들의 도리이지 다른 목적을 위한 최전선으로 만들어서 긴장을 고조하는 것은 큰 나라들이 할 바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 역대 행정부가 과거에는 적대시했던 독일, 일본과 협력해 소련을 견제하고 베트남, 쿠바와도 수교한 사실을 거론하면서 "지금이라도 미국이 북한과 수교하면 미중 경쟁에서도 게임 체인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전 총리는 이날 강연에서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접근에 대해 처음부터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달성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비현실적이고 비효율적"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협상에는 '채찍'과 함께 '당근'도 필요하다"며 "뿌리 깊은 상호불신을 극복하고 협상을 성공시키려면 북한과 미국이 점진적, 동시적, 상호적 방식으로 비핵화와 관계 정상화를 향해 가는 것이 현실적이고 효율적"이라고 주장했다.
단계적 비핵화와 북미 외교관계 수립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주장한 이유로 이 전 총리는 북한이 최강대국 미국과 오랜 기간 대치하면서 강한 피해의식과 안보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게 됐다고 진단했다.
이 전 총리는 북한은 미국, 일본과의 관계 정상화를 원했으나 한국의 견제와 미국의 무시로 실패했고 한국과 미국이 냉전 종식 이후에도 북한을 냉전 사고로 대하는 과정에서 북한 핵 위기가 나왔다고도 주장했다.
또 북한은 외부의 압박이 가해지면 내부 결속이 강해지는 경향이 있다며 경제 제재 등으로 북한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북한 붕괴론'은 "오판"이라고 지적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북한 문제에 충분한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면서 "동맹의 사활적 문제에 대해 소극적으로 대처하거나 관심이 저하되면서 국제적 리더십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도 비판했다.
'북미 협상 정체의 일차적 책임을 미국에 돌리는 것이냐'는 질문에는 "미국에 와있기 때문에 미국에 관해 이야기를 많이 한 것"이라며 "미국에서 북한 욕하고 북한에서 미국 욕해선 효과가 없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이 전 총리는 북한에도 바로 한국, 미국과 다시 대화하고 미국과 조건 없는 협상을 시작할 것을 촉구했다.
그는 "북한이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믿을 수 있는 비핵화 조치를 취해야 한다. 북한은 더 이상 고립과 대결의 길을 가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한국 내 자체 핵무장 여론에 대해서는 "위험하고 어리석은 일"이라며 "한미관계를 악화시키고 동아시아의 핵무기 경쟁을 촉발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전 총리는 이날 강연을 시작으로 4월까지 필라델피아, 뉴욕, 휴스턴, 로스앤젤리스, 덴버에서 대학과 한인 단체 등을 대상으로 강연을 이어갈 예정이라고 이 전 총리 측은 전했다.
이 전 총리는 강연을 통해 정치 행보를 본격적으로 재개한 것이냐는 질문에는 조지워싱턴대 입학 조건이 보고서 제출이나 강연이었는데 학장이 공개 강연을 하라고 했다고 설명하고서 "설마 학장이 저에게 정치 재개를 주문했다고 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6월에는 독일로 가 자신을 초청한 튀링겐대와 베를린대에서 강연하고, 시간이 되면 구동독을 방문한 뒤 같은 달 한국으로 귀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blueke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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