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철군 요구 없어…'친러시아적 중립' 지적 가능성
中외교대변인, 브리핑서 美 겨냥 "이중잣대" 직접 비판
(베이징=연합뉴스) 조준형 특파원 = 중국 정부가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1주년을 맞아 24일 발표한 입장문은 러시아와 서방 사이에 선 중국의 딜레마가 투영된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 맞선 전략 파트너인 러시아와 비록 관계는 껄끄럽지만 경제 회생을 위해 중요한 서방 사이에서 미묘한 '줄타기'를 시도한 것으로 볼 수 있었다.
중국이 입장문 발표를 예고했을 때만 해도 국제사회는 우크라이나와 서방의 결속 강화에 맞서 중국이 러시아에 힘을 실어줄 가능성에 주목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20일(이하 현지시간) 키이우를 방문해 무기 지원 강화를 공언한 데 이어 왕이 중국 공산당 정치국원이 22일 러시아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만난 뒤 나오는 입장이라는 점도 그런 측면에서 관심도를 키웠다.
그러나 이날 공개된 입장문에는 일정 부분 균형 잡기를 시도한 흔적이 엿보였다.
우선 '우크라이나 위기의 정치적 해결에 관한 중국 입장'이라는 제목으로 12개항을 담아 발표한 문건에서 중국이 새롭게 제기한 내용은 거의 없었다.
개전 이후 1년간 표명해온 내용들을 다시 포장해 자국의 평화촉진자 이미지를 부각한 내용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영토 완전성 보장, 유엔 헌장 취지 준수, 합리적 안보 우려 중시 등 내용은 침공을 당한 우크라이나와 침공을 하면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동진 문제를 제기한 러시아 사이에서 '균형'을 맞춘 것으로 풀이된다.
또 대러 독자제재 반대와 핵무기 사용 반대는 러시아와 러시아에 맞선 반대 진영 전체 양측에 각각 힘을 실어 준 내용으로 볼 수 있었다. 중국이 그동안 우크라 문제뿐 아니라 다른 대외 현안에서 주장해온 바와의 정합성을 유지하면서 러시아와 그 반대 쪽에서 중시하는 바를 하나씩 '터치'한 모양새였다.
그동안 중국은 각종 계기가 있을 때마다 미국과 유럽 국가들의 대우크라이나 무기 제공에 비판적 견해를 밝혀왔지만 이날 그와 관련한 직접적 언급은 없었다.
냉전적 사고방식을 버릴 것을 촉구한 내용과, "각측은 이성과 자제를 유지하며 불에 기름을 부어 갈등을 격화시키지 말아야 한다", "우크라이나 위기가 한층 더 악화해 통제 불능이 되는 것을 피해야 한다"고 밝힌 대목이 서방에 대한 우회적 견제로 읽힐 여지가 있었지만, 서방을 직접 겨냥한 비판은 자제한 것이다.
이 역시 전쟁을 시작한 러시아를 비난하지 않고 있는 점을 고려해 균형을 맞춘 것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었다.
다만, 입장문은 러시아의 침공에 대한 비판, 우크라이나에서의 러시아군 철수 요구 등을 담지 않았고, '우크라이나 전쟁'이라는 표현 대신 '우크라이나 위기'라는 표현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러시아의 책임을 희석했다는 평가도 가능해 보인다.
중국 입장문 내용 중 산업망과 공급망 안정, 곡물 수송 보장 등은 전쟁으로 예기치 않은 피해를 본 국제사회, 특히 개발도상국들의 바람을 대표해서 제기한 언급으로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전쟁의 당사자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최대한 조기에 직접 대화를 가질 것을 촉구한 것은 일견 당위적이고 원론적 언급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지역 일부를 점령하고 있는 상황을 인정하는 바탕 위에서의 조기 대화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우크라이나가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관측이 나온다.
즉, 중국의 조기 직접 대화 제안은 중립적으로 보이지만 보는 각도에 따라 러시아의 입장에 좀 더 가까운 제안으로 여겨질 수 있다는 얘기다.
결국 중국이 이날 밝힌 입장은 '중립'의 모양새를 취했으나 우크라이나나 서방은 러시아의 침공 책임을 반영하지 않은 '기계적 중립'이라는 불만을 가질 수 있는 내용으로 풀이된다.
서방이 고도로 우려해온 '중국의 대러시아 무기 제공'과 연결되는 내용은 없었지만, 침공 책임을 반영하지 않은 중립은 결국 '친러적 중립'이라는 서방의 인식은 이번 중국의 발표를 계기로 변하지 않을 공산이 커 보인다.
한편, 중국은 입장문에서 미국 등 서방에 대한 '실명 비판'은 자제했지만, 당일 오후 외교부 브리핑에서 날을 세웠다.
왕원빈 외교부 대변인은 우크라 전쟁 1주년에 대한 중국의 입장을 추가로 설명해달라는 중화권 매체의 질문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는 냉전의 산물인데 냉전의 종식과 함께 종결되기는커녕 전통적 방위 지역과 영역을 돌파하고 아시아·태평양 지역까지 가서 갈등을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왕 대변인은 미국이 우크라이나의 주권을 존중해야 한다면서 대만 문제에서 중국의 내정에 간섭하고 있다면서 "이런 이중 잣대는 국제사회의 보편적 저항과 반대에 부딪히고 있다"고 부연했다.
jh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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