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역사상 여성 감독이 수상한 경우는 2000년 단 한 번
(파리=연합뉴스) 현혜란 특파원 = 매년 최고의 프랑스 영화를 뽑아 시상하는 세자르상이 올해 감독상 후보로 남성 감독만을 선정해 비판이 일고 있다.
세계적인 영화제에서도 인정을 받고, 프랑스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은 여성 감독의 작품이 있는데도 이들을 감독상 후보에 올리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영화 '생토메르'(Saint Omer)로 이탈리아 베니스 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 등을 받았고, 미국 아카데미상(오스카상) 국제장편영화 부문 예비후보로 이름을 올린 알리스 디오프 감독이 대표적이다.
알리스 위노쿠르 감독이 만든 '파리의 기억'(Revoir Pairs), 레베카 즐로토프스키가 선보인 '타인의 아이들'(Les enfants des autres)은 영화 비평가들은 물론 대중들에게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프랑스앵포 방송은 제48회 세자르상 시상식이 열리는 24일(현지시간) "최고의 감독상에 여성 후보가 없다는 것은 나쁜 인상을 준다"며 이같이 보도했다.
세자르상 작품상 후보에 오른 루이 가렐 감독의 '리노상'의 제작자 안 도미니크 투생은 "대단한 성취를 한 여성 감독들이 후보 명단에 없다는 게 놀랍다"고 말했다.
익명으로 남길 원한 한 여성 감독은 프랑스앵포에 "올해는 여성들이 만든 정말 좋은 영화들이 많다"며 "그들의 작품들은 논란의 여지 없이 우수하다"고 강조했다.
수상 후보로 지명되지 못한 한 여성 감독은 "올해 후보로 뽑히지 못한 감독들이 속상할 수 있겠지만, 피해자처럼 비치길 원하진 않는다"고 털어놨다.
공개적으로 주최 측에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를 낸다면 주변의 격려와 지지를 얻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후일 후보에서 배제될 가능성을 우려한 것이다.
프랑스 앵포는 2018∼2022년 세자르상 감독상 후보 중 여성은 20%뿐이었고, 실제 수상한 여성은 없었다며 "남성 지배적인 현상은 새롭지 않다"고 지적했다.
프랑스 영화예술기술아카데미가 1976년부터 개최해온 세자르상에서 감독상을 여성 감독에게 안긴 사례는 2000년 '베뉘스 보테'를 만든 토니 마르샬 감독이 유일하다.
영화예술기술아카데미 측은 올해 최고 감독상 부문 후보에 여성 감독이 없는 것에 대해 "유감"이라는 입장을 밝혔다고 프랑스앵포는 전했다.
'프랑스판 오스카'로 불리는 세자르상은 프랑스에서 가장 권위 있는 영화상으로, 영화 산업 모든 직군을 대표하는 아카데미 회원들이 투표로 후보와 수상자를 정한다.
영화감독 겸 배우 오드레이 다나는 "아카데미 회원의 44%가 여성이지만, 이 비율은 후보 선정에 반영되지 않는다"며 "아카데미는 의심할 여지 없이 보수적"이라고 평가했다.
이처럼 남성 중심적이라는 비판을 받는 세자르상에 반대하며 여성 월간 잡지 코제트는 '클레오파트라 상'을 만들어 올해 최고의 여성 영화 감독에게 수여했다.
코제트는 알리스 디오프 감독의 영화 '생토메르'에 관객상을, 레베카 즐로포트스키의 영화 '타인의 아이들'에 심사위원상을 각각 시상했다.
아나 퀴그자크 코제트 편집장은 현재 상황에 즉각적으로 반응해 클레오파트라 상을 만들었다며, 이 상의 유일한 목적은 부당함에 빛을 비추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run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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