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자본시장 정상화하는 과정" vs "경영진 방어수단 개선 필요"
(서울=연합뉴스) 윤선희 채새롬 송은경 기자 = 주식투자자 수가 1천만 명을 넘어서고, 주주 권리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면서 소액주주들의 주주행동 '붐'이 일고 있다.
최근 늘어난 국내 주주제안은 감사 등 이사 후보 추천과 배당 확대에 집중된다는 것이 특징이다.
소액주주 운동에 대해 기업의 비정상적 지배구조의 정상화로 보는 긍정적 시각이 있는 한편, 기업의 내재가치와 상관없이 주가가 급등락하는 등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 주식투자자 1천만명…"소액주주들 코로나19 이후 각성"
26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최근 행동주의 펀드들의 주주행동이 거세지는 가운데 소액주주가 적극적으로 주주권리를 행사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DB하이텍[000990], 한국알콜[017890], 광주신세계[037710], 사조산업[007160], 알테오젠[196170], 휴마시스[205470] 등 현재까지 알려진 것만 십여개 종목의 소액주주 연대가 주주제안을 회사 측에 제출했다.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한투연)에 따르면 이 모임과 연계해 활동하는 소액주주 모임만 30개에 이른다.
코로나19 기간 '동학개미운동'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주식 투자 열풍이 불고, 주주 권리에 대한 인식도 제고되면서 소액주주 운동이 잇따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2021년 말 12월 결산 상장법인의 소유자(중복 제외)가 약 1천384만명으로, 처음으로 1천만명대에 진입했다.
특히 최근에는 '헤이홀더' 등 소액주주 커뮤니티가 활성화되고 주주제안에 대한 접근성도 커졌다. 신풍제약[019170] 소액주주들은 헤이홀더를 통해 의결권을 모아 지난 9일 이사회에 주주제안을 발송했다.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는 "코로나19 이후 증시가 호황을 보이다 부진해지는 과정에서 기업의 물적분할 및 쪼개기 상장 등이 지배주주 이익을 높이는 쪽으로 활용이 되니 소액주주들의 분노가 커졌다"고 말했다.
이어 "재작년에 상법이 개정돼 감사위원을 분리선임 하는 것으로 바뀌면서 소액투자자들이 감사위원이 될 사외이사를 주주제안 형식으로 제안하는 것이 과거와 비교해 늘어나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 국내 주주제안 성격은…감사선임·배당 확대 많아
국내 주주제안은 해외 사례와 비교했을 때 이사 등 후보를 추천하는 안이 특히 많은 것이 특징이다. 행동주의 기관투자자들과 개인투자자들의 제안 안건에서는 특별한 차이가 나타나지 않는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에 따르면 작년 주주총회(정기·임시 전체) 중 주주제안이 제기된 회사는 41개사로, 100건 이상의 안건이 상정됐다.
이중 이사 등 후보를 추천하는 내용이 25개사(61%)로 가장 많았다.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감사나 감사위원 후보를 추천한 경우가 19개 사로 대부분이다.
그다음이 정관 변경의 건(16개사·39.0%), 배당 및 자사주 취득, 소각 요구 등(14개사·34.1%), 이사 등 해임 건(6개사·14.6%) 등 순이었다.
이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중 E(환경)·S(사회) 분야 주주제안이 많은 미국, 정관 변경에 대한 주주제안이 많은 일본과 차이가 나는 지점이다.
상장협이 작년 미국 러셀3000지수에 속하는 기업들의 주주제안 555건을 분석한 결과 환경·사회분야 주주제안이 288건, 지배구조 관련 주주제안이 218건이었다. 작년 일본 정기주주총회에서 주주제안이 제기된 77개사 중에서는 정관 변경의 건(16개사·20.8%), 이사 등 해임의 건(16개 사·20.8%)이 많았다.
이재혁 상장회사협의회 본부장은 "주요국과 달리 국내에서는 감사나 감사위원을 추천하는 경영권 공격이 주를 이룬다"며 "이런 제안은 회사의 본질적 가치를 높인다기보다 (행동주의) 주주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감사 선임을 주주제안으로 제출한 한 소액주주 모임 대표는 "기업들은 경영을 감시하고 참여하고 조언하는 인물이 외부인으로 들어오는 걸 아주 부담스러워한다"며 "소액주주 입장에선 우리 측 감사가 들어가면 회사 내부 사정을 더욱 자세히 알 수 있고, 회사와 대화하기가 훨씬 용이해진다"고 말했다.
◇ '행동주의' 테마주 우려도…"주주자본주의는 시작일 뿐"
일각에서는 주주행동주의의 부작용을 우려하기도 한다.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얼라인), 트러스톤자산운용 등 행동주의펀드가 증권가를 강타한 뒤로 이들의 움직임이 시장에서 '테마주'처럼 받아들여지며 업계의 우려를 낳고 있다.
SBS[034120]는 최근 일주일간 얼라인과의 관계 때문에 주가가 오락가락했다. SM엔터테인먼트와 금융지주를 상대로 주주활동을 펼치며 주가 상승을 이끌었던 얼라인이 SBS 지분을 일부 보유했다는 소문이 확산하자 SBS 주가는 이틀 연속 5∼8%대 급등했다.
이후 얼라인이 지분 보유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공개 캠페인을 진행할 계획이 없다고 밝히면서 SBS 주가는 10% 넘게 급락했다. 그러나 얼라인이 비공식적으로 추천한 사외이사가 SBS 주주총회 선임 안건으로 오르자 주가는 다시 상승했다.
소액주주들이 뭉쳐 주주제안을 내고, 그중 일부만 받아들여져도 주가가 오르기도 한다. 일신방직[003200], 농심홀딩스[072710], 한국알콜, 알테오젠, 이수화학[005950] 등은 주주환원 기대감에 낮게는 2%, 높게는 8% 넘는 강세를 보였다.
문제는 행동주의로 주가가 단기간에 급등하고 나면 나중에 주가가 하락할 경우 일반 투자자들이 손실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류 대표는 "행동주의는 단기간에 수익률을 극대화하려는 전략을 취하기 때문에 주가와 기업가치 간 단기적으로 이격이 발생할 수 있다"며 "일종의 버블이 발생할 수 있으나 버블은 반드시 꺼진다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경영계는 주주행동주의가 주가에 거품을 만드는 것으로만 귀결되지 않도록 소수주주와 최대주주가 '힘의 균형'을 갖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주주가 차등의결권, 신주인수선택권(포이즌 필) 등 경영권 방어 수단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상장협은 "기업 경영권 확보를 위한 적대적 인수합병 시도가 기업의 중장기 가치에 긍정적이지 않은 상황에서도 기존 경영진은 효율적 방어 수단이 없는 상황"이라며 "경영권 공격 및 방어 관련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반면 당국을 중심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증시 저평가) 해소와 자본시장 선진화에 주력하고 있는 현 단계에서 주주자본주의는 이제 시작일 뿐이라는 의견도 있다.
김우진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예전이 비정상적이었던 것이고 주주들도 이젠 주인 의식을 갖게 되면서 한국 자본시장이 정상화하고 있다"며 "대주주의 경영권은 천부인권 같은 권리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그러면서 "한국은 아직 주주자본주의를 시작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울어진 운동장을 일반주주들 쪽으로 더 옮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srch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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