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푸틴·젤렌스키와 잇달아 만날 경우 일정 역할 가능성
(베이징=연합뉴스) 조준형 특파원 =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1주년을 즈음해 중국 외교 라인이 바빠졌다.
협상을 통한 해결을 의미하는 '정치적 해결'에 대한 공식 입장을 1주년인 24일(이하 현지시간) 발표한 데 이어 잇달아 두 진영에 속한 각국 정상들과 빈번한 접촉을 시도하고 있다.
중국 외교부는 '우크라이나 위기의 정치적 해결에 관한 중국 입장'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문서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최대한 빨리 직접 대화를 재개하라고 촉구했다.
중국은 또 "대화와 협상은 우크라이나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며 "국제사회는 화해를 권유하고 협상을 촉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다이빙 주유엔 부대사는 24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우크라이나 문제 관련 공개 회의에서 '전제조건 없는 협상 재개'를 제안했다.
전쟁 양 진영 국가들을 상대로 한 시진핑 국가주석의 정상 외교도 이어진다.
시 주석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가까운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을 28일부터 사흘간 체류하는 일정으로 초청(국빈 방문)했고, 최근 러시아를 다녀온 왕이 중앙정치국 위원을 통해 푸틴 대통령의 방러 초청을 받아둔 상태다.
또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과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이 상반기에 방중할 수 있다고 EU 주재 중국 대표부 푸충 대사가 26일자 중국 관영 매체 환구시보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여기에 더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4월 초에 중국을 방문할 것이라고 최근 직접 밝혔고,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가 상반기 중 중국을 방문할 것이라는 매체 보도가 나왔다.
유럽 지도자들의 연쇄 중국 방문 계기에 시 주석은 자국 입장을 역설하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측의 직접 협상 조기 개최에 대한 동조세를 확산하려 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앞서 중국의 외교라인 일인자인 왕이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은 최근 유럽 방문 기간 벨기에·독일·헝가리 총리, 프랑스·이탈리아 대통령 등 5개국 정상과 만난 바 있다.
이런 중국과 유럽의 빈번한 고위급 교류에 대해 중국 관영 영자지 글로벌타임스는 27일자 기사에서 "중국과 유럽이 평화협상의 진전을 목표로 소통과 조율을 강화하는 '공통 기반'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썼다.
전쟁 장기화가 '미국·유럽 대(對) 중국·러시아'의 진영 대립 구도를 심화시키는 상황이 중국 대외정책에 점차 큰 부담으로 작용하는 가운데 중국도 전쟁의 추가적 장기화를 막기 위해 지난 1년간보다는 좀 더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듯한 양상이다.
중국의 중재에 가장 적극적으로 호응하고 나선 쪽은 우크라이나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24일 기자회견에서 중국의 입장에 대해 "중국이 자신들의 생각을 표현했다고 본다"며 "중국이 우크라이나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는 사실은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구체적 일정과 장소는 거론하지 않은 채, 시 주석을 만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발언이 중국과 러시아의 밀착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지만 시 주석의 중재자 행보에 힘을 실어주는 측면도 있어 보인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를 지원해온 서방의 반응은 냉담하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4일 미국 ABC 방송과 인터뷰에서 "나는 중국의 계획이 이뤄질 경우 러시아 외 누군가에게 이로울 수 있는 점을 그 계획에서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은 24일 기자회견에서 중국 입장에 대한 질문을 받고 "중국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불법적인 침공을 규탄하지 않았기 때문에 신뢰가 높지 않다"고 답했다.
또 보리스 피스토리우스 독일 국방부 장관은 26일 독일 라디오 도이칠란트풍크와 인터뷰에서 중국의 입장에 대해 "말이 아닌 행동으로 중국을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방의 이 같은 반응에는 중국이 침공으로 전쟁을 시작한 러시아를 비판하지 않고, 러시아와의 정상적인 무역 거래를 계속하는 상황에서 중국을 중립적 협상촉진자로 인정하기 어렵다는 뉘앙스가 읽힌다.
다만 시 주석이 푸틴 대통령뿐 아니라, 개전 이후 회담이나 통화를 하지 않고 있는 젤렌스키 대통령과도 만난다면 상황은 달라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보인다.
서방이 견제하는 중국이 직접 중재자의 역할을 담당하긴 어렵지만 시 주석이 전쟁의 쌍방 정상과 잇달아 만난다면 유엔 등이 평화협상을 중재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데 일정한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도 가능해 보인다.
jh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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