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집·사설 동물원서 버려진 동물이 대다수…해외 이송도 어려워
(서울=연합뉴스) 유한주 기자 = 전쟁으로 신음하는 우크라이나에서 동물들도 방치되거나 버려져 고통을 당하는 경우가 속출해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27일 영국 시사 주간 이코노미스트 보도에 따르면 러시아 침공 이전까지 승마 클럽을 운영했던 나탈리아 포포바는 지난해 2월 개전 이후 지금까지 거리를 떠돌던 동물 약 600마리를 구조했다.
구조한 동물들 대다수는 전선 인근의 가정집이나 사설 동물원에서 애완용으로 키우다가 전쟁이 터진 후 버려진 것이라고 한다.
포포바는 지난해 말에는 수도 키이우 외곽의 한 헛간에서 백호 한 마리를 발견했다는 우크라이나군의 연락을 받고 구조에 나섰다.
포포바가 알렉스라고 이름 붙인 이 백호는 처음 발견됐을 당시 상처로 온몸이 피투성이였고 위장염을 앓고 있었다.
또 비좁은 헛간에 갇혀 오랜 기간 굶주린 상태였고 호흡기에 문제가 생겨 제대로 포효하지도 못했다.
포포바는 소식을 듣자마자 600㎞를 운전해 달려갔고 우크라이나군의 도움을 받아 지난달 알렉스를 자신이 소유한 마구간으로 데려왔다.
알렉스는 포포바의 보살핌으로 체중이 늘고 다시 걸을 수도 있게 됐다고 한다.
하지만 모든 구조가 이렇게 순탄하게 진행되는 건 아니다.
포포바는 최근 격전이 벌어지는 도네츠크주(州)의 요충지 바흐무트에서 곰 한 마리를 구조하려 마취를 준비하던 중 불과 몇 미터 거리에 수류탄이 떨어지는 아찔한 상황을 겪었다.
천만다행으로 수류탄이 터지지 않아 무사했지만 그는 당시 곰에게 "우리 같이 죽자"고 말하면서 홀로 대피하는 것을 거부했다고 털어놨다.
현재 포포바가 소유한 사육장에는 호랑이, 곰뿐 아니라 고양이나 사자 등 다양한 동물이 각자의 구역에서 보살핌을 받고 있다.
포포바는 구조한 동물이 어느 정도 컨디션을 회복하면 키이우 동물원이나 북유럽 국가를 비롯한 해외의 동물원으로 이들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동물원 상황도 열악한 탓에 동물이 겪는 고통은 여전하다고 한다.
키이우 동물원에서는 정전이 자주 발생해 일부 동물은 하루의 대부분을 어둠과 추위 속에서 보내야 하는 실정이다.
동물들은 또한 계속되는 포격 소리에 공포에 질리곤 한다. 코끼리 한마리는 미사일 공격이 시작되면 몸을 숨길 곳을 찾아 들어가기도 한다고 키릴로 트란틴 키이우 동물원장은 전했다.
해외로 동물을 보내는 과정도 만만치 않다.
포포바와 함께 구조 작업을 하는 동물보호단체 유애니멀스(UAnimals)는 동물을 해외 동물원으로 이송할 때마다 "우크라이나의 관료주의와 싸워야 한다"고 비판했다.
관련 서류 작업을 마무리하는 데만 몇 달이 걸리는 데다 동물의 원래 주인이 누구인지 등 파악이 불가능한 정보를 당국에 제출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포포바는 이렇게 운송이 지연되면 고통받는 건 동물이라면서 "하루빨리 이들을 유럽으로 데려가야 한다"고 호소했다.
hanju@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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