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EU 합의 도출에 일단 기대감…연방주의자·브렉시트 강경파 설득이 관건
본토서 북아일랜드행 물품은 통관 면제…EU법 거부권 행사 가능
(런던=연합뉴스) 최윤정 특파원 = 영국과 EU가 새로운 브렉시트 후속 조치에 합의함에 따라 브렉시트가 촉발한 북아일랜드 문제가 해결될지 주목된다.
리시 수낵 영국 총리와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27일(현지시간) 북아일랜드 관련 브렉시트 협약을 수정한 '윈저 프레임워크'를 발표했다.
브렉시트 후 영국과 북아일랜드간 교역에 차질이 생기고, 이로 인해 북아일랜드 사회·정치가 불안해지는 한편 영국과 EU간 외교 갈등이 고조되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다.
취임 넉달 만에 승부수를 던진 수낵 총리가 북아일랜드 안정을 끌어내는 데 성공하면 정치 기반이 탄탄해질 것으로 보인다.
◇북아일랜드 협약 왜 문제 됐나
영국과 EU는 보리스 존슨 전 총리 시절에 브렉시트 후 북아일랜드 교역 관련 문제를 정리하기 위해 북아일랜드 협약을 체결했다.
아일랜드섬에 있는 북아일랜드는 2020년 단행된 브렉시트로 인해 영국 영토이면서도 EU 단일 시장으로 남는 독특한 지위가 됐다.
그러면서도 아일랜드섬 평화의 기틀이 된 벨파스트 평화 협정에 따라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간 이동은 자유롭게 유지됐다.
그러다 보니 북아일랜드가 EU 단일시장으로 들어가는 뒷문이 될 것이란 우려가 나왔다.
이에 영국과 EU는 본토에서 북아일랜드로 넘어가는 물품은 통관·검역을 거치도록 하고, 북아일랜드 협약 관련 사항은 유럽사법재판소(ECJ)가 최종 사법권을 갖는 내용으로 북아일랜드 협약을 맺었다.
브렉시트에서 가장 까다로운 북아일랜드 이슈를 이렇게 풀었으나 2021년 협약 발효 후 곧바로 곳곳에서 파열음이 나왔다.
특히 영국에서 냉장육과 의약품 등을 북아일랜드로 보낼 때 EU 기준에 맞추고 많은 양의 서류를 준비하는 일 등이 문제가 됐다.
또, 북아일랜드 연방주의자들이 영국과의 사이에 사실상 무역 장벽이 생기는 데 불만을 품고 동요했다.
이에 영국이 일방적으로 유예기간을 연장하고 협약 수정을 요구하면서 EU와 충돌하기 시작했다.
EU가 소송을 걸고 영국이 협약을 일방 취소할 수 있는 법안을 발표하는 등 양측은 강대강 대치를 벌였다.
북아일랜드에선 연방주의 정당인 민주연합당(DUP)이 작년 2월부터 브렉시트에 반발하며 연정을 거부해서 1년 넘게 정부 구성이 안 됐다.
작년 5월 선거에서 아일랜드 민족주의 정당인 신페인당이 사상 첫 제1당으로 올라서면서 민심이 확인됐지만 연방주의자들의 저항은 거셌다.
이런 가운데 아일랜드계 조 바이든 대통령이 이끄는 미국이 아일랜드섬 정치 불안에 상당한 우려를 표하면서 영국을 압박했다.
영국으로서도 최대 무역 파트너인 EU와의 무역전쟁 가능성은 큰 부담이었고 일방적 협약 파기는 국제법 위반이라는 지적도 무시하기 어려웠다.
이후 작년 10월 수낵 총리가 취임하면서 영국과 EU간의 분위기는 한결 부드러워졌고 양측은 한 발씩 물러섰다.
4월 벨파스트 평화 협정 25주년 전에 해법을 찾아 바이든 대통령의 방문까지 끌어내려는 의지도 속도를 내는 데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북아일랜드행 물품은 통관 면제…EU법에 거부권 행사 가능
합의안에 따르면 본토에서 북아일랜드로 넘어가는 길이 북아일랜드행(초록줄)과 EU행(빨간줄)으로 나뉘고, 인증업체가 초록줄로 보내는 물품은 국내간 이동으로 분류돼 검사를 하지 않는다.
즉, 본토와 북아일랜드 슈퍼에서 동일한 식료품 팔 수 있게 된다.
북아일랜드에서 파는 의약품은 영국 규제당국 승인을 받는다.
대신 영국은 본토와 북아일랜드간 무역 데이터를 EU에 실시간 공유하는 등 밀수를 막기 위한 조처도 병행한다.
또 북아일랜드의 부가가치세, 정부 지원, 주세 등을 영국 정부가 결정할 수 있게 된다. 영국이 EU 리서치 프로그램에도 참여할 수 있다.
EU법 관련 최종 분쟁조정은 유럽사법재판소가 맡지만 EU가 규제를 바꿀 때 북아일랜드 의회가 브레이크를 걸 수 있다.
◇ 수낵, 연방주의자·브렉시트 강경파 반발 무마할까
이번 합의의 성공 여부는 DUP가 수긍하고 연정에 응할지에 달려있다.
DUP는 당장 반대 의견을 밝히진 않고 세부사항을 살펴보겠다고 말했다. DUP 측은 상당한 진전이라고 평가하면서도 핵심 우려는 남아있다고 말했다.
DUP가 연정에 응하면 보수당 브렉시트 강경파들도 어깃장을 놓기 어려워진다.
작년 10월 리즈 트러스 전 총리에 이어 갑자기 집권한 수낵 총리는 북아일랜드 문제 해결에 성공하면 다음 총선을 향해 당을 끌어갈 동력을 얻게 될듯하다.
한편, 이날 찰스 3세 국왕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의 면담을 두고는 총리가 국왕을 정치에 끌어들였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마치 국왕이 이번 합의안에 힘을 실어주는 듯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총리실은 의례적인 외국 정상과의 면담이고 국왕의 결정이며, 왕정을 지지하는 연방주의자들에게 신호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최종 협상 장소를 윈저로 정한 이유에도 특별한 것이 없다고 말했다.
반면 왕실 대변인은 "국왕은 영국을 방문하는 어떤 외국 정상과도 기꺼이 만날 것이며, 그것이 정부의 권고다"라며 총리실에 책임을 넘기는 듯한 뉘앙스를 남겼다.
mercie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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