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인종차별 정책에 따른 경제적 손실 배상" 자문위 권고
"흑인 저소득" vs "시 재정 감당불가" 찬반 후끈…6월 투표 방침
(서울=연합뉴스) 최재서 기자 = 미국 캘리포니아주(州) 샌프란시스코에서 흑인 주민들에게 과거 인종차별 정책에 따른 거액의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권고가 나와 논란이 일고 있다.
27일(현지시간)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샌프란시스코 아프리카계미국인배상자문위원회(AARAC)는 흑인 주민 1인당 500만 달러(약 66억 원)의 인종차별 배상금을 받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약 60년 전 이뤄진 필모어 지구 철거 등 과거 인종차별적 정책으로 발생한 경제적 피해를 배상한다는 취지로, 일정 기준을 충족해야 수혜 대상이 된다.
앞서 1960년대 샌프란시스코 당국이 '서부의 할렘가'로 불리던 흑인 거주지역 필모어 지구를 재개발하는 과정에서 사업체 883곳이 폐업하고 약 2만 명이 집을 잃었다. 이후 이곳은 주택 한 채당 수백만 달러가 넘는 백인 거주지로 탈바꿈했다.
에릭 맥도널 AARAC 위원장은 "이들 가족(흑인)이 노예제와 그로 인해 파생된 모든 정책이 망가트린 경제적 복지와 성장, 활력을 되찾도록 하기 위해 어느 정도의 투자면 충분할지를 논의했다"고 설명했다.
미국 다른 도시와 주 10여 곳에서도 차별 배상을 위해 흑인에게 장학금·주택바우처를 제공하거나 현금을 주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시카고 북부 일리노이주 에반스톤시는 2021년 미국에서 처음으로 1인당 2만5천 달러의 배상금 지급을 결정했다.
배상 찬성론자들은 이번 500만 달러 권고안이 타당하다는 입장이다. 흑인 주민의 중간소득이 4만4천 달러로 라틴계(8만5천 달러)와 아시아계(10만5천 달러), 백인(11만3천 달러)의 절반 수준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 정도 금액은 돼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보수 세력을 중심으로 배상안 규모가 지나치게 크다는 거센 반발이 터져 나오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시 연간 예산이 140억 달러(약 18조원)에 불과할 뿐 아니라, 아직도 코로나19 팬데믹의 충격에서 회복 중이라는 점 등이 반대의 이유다.
일정 기준에 부합해야만 배상금을 지급한다고 해도, 흑인 주민이 5만 명에 달한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시 재정이 감당 불가능한 수준이라는 주장이다.
샌프란시스코 공화당 의장 존 데니스는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한 방에 모여 만들어낸 숫자에 불과하다"며 "보고서를 보면 알겠지만, 이 숫자를 도출한 합당한 이유도 분석도 없다"고 비판했다.
차별 배상금 지지자들 일각에서도 이 정도 수준의 금액은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경제학자 윌리엄 A. 다리티 주니어는 "지방정부에 500만 달러 지급을 요구하는 것은 배상 노력의 신뢰도를 깎아내린다"고 꼬집었다. 그는 인종 소득격차를 고려하면 1인당 35만 달러가 적당하다고 보고 있다.
캘리포니아주가 별도로 구성한 주 차원의 배상 태스크포스에서는 1933∼1977년 차별적 주택 정책에 대한 주의 배상책임을 최대 5천690억 달러로 집계했다. 이는 흑인 주민 1인당 22만 달러 수준이다.
샌프란시스코 행정감독위원회는 오는 6월 AARAC 최종보고서가 발간되면 배상안과 관련해 투표를 진행할 예정이다.
샌프란시스코 인권위원회 경제적 권리 부문 디렉터 브리트니 치쿠아타는 "흑인 주민들을 위해 가능한 최선의 방안을 지지하는 게 배상위원회의 책임"이라며 "(이후) 도시가 제공할 수 있는 수준을 정하는 건 선출직(의회)에 달렸다"고 말했다.
감독위의 유일한 흑인 위원 샤먼 월턴은 "(배상)금액에만 초점을 맞추는 자들은 흑인 배상제도를 깎아내리려는 사람들"이라며 배상안을 지지했으나, 또 다른 위원인 힐러리 로넌은 "지금과 같은 (공공) 서비스를 유지하려면 그 정도의 돈은 지불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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