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니발 귀갓길, 불과 수초만에 악몽으로 변해
(로마=연합뉴스) 신창용 특파원 = '끼익~' '쾅~'하는 굉음과 함께 열차 안은 순식간에 아비규환이 됐다.
자리에서 튕겨 나간 승객들 머리에서는 피가 흐르고, 열차 내에는 살려달라는 목소리와 비명이 뒤엉켜 터져 나왔다.
지난달 28일(현지시간) 그리스 중부 테살리아주 라리사 인근에서 여객열차와 화물열차가 충돌해 최소 36명이 사망하고 수십 명이 다치는 참사가 벌어졌다.
수도 아테네에서 테살로니키로 향하던 여객 열차가 자정 직전 라리사에서 24㎞가량 떨어진 템피에서 마주 오던 화물열차와 정면으로 충돌했다. 두 열차는 서로의 존재를 몰랐던 듯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고 현지 관리들은 설명했다.
여객열차 안에는 춘제 카니발 시즌을 맞아 황금연휴를 즐기고 귀향하던 대학생 등 젊은 층이 많이 타고 있었다.
즐거웠던 연휴가 악몽으로 바뀌는 데는 몇 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목격자들은 급제동하는 소리와 함께 '광'하는 굉음을 들었다고 전했다.
5호 객차의 한 승객은 현지 SKAI TV에 "창문이 깨지고, 차내는 온통 비명으로 가득했다"며 "창문 중 하나는 다른 열차(화물열차)의 쇳덩어리가 부딪혀 움푹 팼다"고 말했다.
여객열차에는 승객 약 350명이 탑승했다. 많은 젊은이가 탑승해 열차의 3분의 2가 꽉 찬 것으로 전해졌다.
코스타스 아고라스토스 테살리아 주지사는 약 250명이 목적지 테살로니키로 버스로 안전하게 대피했다고 밝혔다.
SKAI TV가 전한 사고 현장 영상은 폭격을 맞은 듯 처참했다.
앞 차량이 탈선해 심하게 부서졌고, 창문은 깨지고 두꺼운 연기 기둥이 하늘로 치솟았다. 선로 주변에는 부서진 열차 잔해가 사방에 흩어져 있었다.
BBC는 그리스 현지 언론인의 말을 인용해 "사고 열차의 앞부분 두 객차는 너무나 파손이 심해 아무것도 남지 않았으며 '그냥 사라졌다'고 해야 할 정도"라고 전했다.
자녀와 연락이 닿지 않아 걱정스러운 마음에 테살로니키 기차역으로 무작정 달려온 부모도 있었다.
한 여성은 "아이가 전화를 안 받는다"며 제발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간절하게 기도했다.
28세 승객 스테르기오스 미네니스는 "열차 안에는 공포가 가득했다"며 "오른쪽, 왼쪽 가릴 것 없이 사방이 불길에 휩싸였다"고 전했다.
마지막 객차에 있었다는 다른 승객은 기차가 흔들리고 뒤집히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그는 "나는 겨우 빠져나와 앞쪽으로 갔다. 기차는 90도 각도로 구부러졌고, 내가 서 있던 바로 그 자리에 5명이 다쳤다"고 말했다.
날이 밝아지면서 수색 및 구조작업에도 속도가 나고 있다.
현지 방송에선 희생자로 추정되는 시신이 하얀 시트로 덮여 구급차에 실리는 모습이 TV 카메라에 잡혔다.
현지에서는 대형 크레인이 동원돼 탈선한 열차를 들어 올리고 있고 구호 요원들이 잔해 사이를 필사적으로 헤집으며 생존자를 찾고 있다.
라리사 시내의 중앙 광장에는 긴급 헌혈센터가 설치돼 부상 환자들에게 수혈할 혈액을 모으고 있다.
그러나 수색 작업이 본격화하면서 잔해 밑에 깔린 시신이 발견될 가능성이 크고 치료 중인 환자들 가운데 중상자도 적지 않아 사망자는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changy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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