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가 유일한 산업'…푸틴 앞잡이 신세된 가난한 러 국경도시

입력 2023-03-02 11:41  

'군대가 유일한 산업'…푸틴 앞잡이 신세된 가난한 러 국경도시
군대는 몇 안되는 빈곤 탈출구, 보상과 선전전 먹혀…주민 속내는 복잡



(서울=연합뉴스) 김성진 기자 = 러시아 국경도시들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전쟁을 대체로 지지하는 이면에는 변변한 일자리라고는 주로 군인밖에 할 게 없는 가난한 현실이 자리하고 있다고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일례로 국경도시 프스코프에선 우크라이나전 전사자를 묻는 매장이 거의 매일 벌어지지는 가운데 주민들은 여전히 전쟁을 옹호하는 분위기다. 프스코프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인 에스토니아 국경 동쪽으로 20㎞밖에 안 되는 곳에 있으며 정예 공수부대인 제76 근위대공중강습사단의 근거지이다.
러시아 낙하산 부대의 경우 전투원의 절반가량을 잃었다고 크렘린궁에서 군 동원을 담당하는 실무그룹 관계자가 지난 1월 밝힌 바 있다.
서방 관리들은 우크라이나전에서 숨진 러시아 군인 수가 20만 명에 가깝다고 추산하나 러시아에서 반전 분위기는 높지 않는 편이다. 푸틴에 대한 높은 지지도도 별다른 변화가 없다.
가난한 프스코프주의 주도인 프스코프에선 군부대가 현지 양조장, 국경 통제 업무와 더불어 최대 고용주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푸틴 대통령이 500만 루블(약 8천500만 원)에 달하는 유족들에게 전사자 위로금을 주라고 지시한 뒤로 프스코프에서는 많은 사람이 전쟁에 반대하기를 무서워하거나 주저한다. 프스코프의 평균 월급은 3만9천 루블(65만 원)에 불과하다.
전사를 영예로운 것이라고 선전해온 푸틴 대통령이 최근 우크라이나전에서 아들을 잃은 한 어머니에게 "당신의 아들은 생의 목적을 달성한 만큼 헛되이 죽지 않았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TV에 방영되기도 했다.

이러한 푸틴의 논리는 프스코프에서 먹히는 편이다. 제76사단 장교 출신인 유리 알렉세예프는 비록 전사자가 많기는 해도 "더 많은 사람이 음주로 사망한다"고 말했다.
자수 가게를 운영하는 류드밀라 세미오노바는 34세인 자신의 조카가 실업자로 집에서 술만 마시며 아내가 벌어다 주는 돈으로 생활한다면서 "난 그놈에게 '왜 전쟁터에 가지 않느냐'고 말한다"고 전했다.
푸틴의 전쟁 옹호론 이면에는 역사적으로 광대한 영토전쟁을 벌여온 러시아 민족주의도 자리잡고 있다.
푸틴이 외세의 침략에 맞선 영웅으로 내세우는 알렉산더 네브스키는 1240년대 유럽 침략자들에 대항해 러시아를 수호한 인물로 숭앙된다. 네브스키가 싸운 호수가 프스코프 인근에 있고 제76사단 밖 광고판에도 네브스키 모습이 등장할 정도로 프스코프 주민들은 이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현지 심리학자 카테리나 이바노바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푸틴 대통령이 처음에 30만 예비군 동원령을 내렸을 때 주민들이 불안감에 정신과를 많이 찾았으나 이제는 그만큼 무서워하지 않는 것이 '뉴노멀'(새로운 표준)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같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옹호하는 사람들도 정작 가족들 얘기로 가면 속내가 복잡하다.
니콜라예바는 음식, 의류, 위문 편지를 전방 76사단 군인들에게 보내는 자원봉사활동을 친구 율리아와 함께 하고 있다. 그는 "조상들이 못다 한 위대한 조국 수호의 일을 우리 남정네들이 해내고 있다"면서 자랑스러워했지만 정작 전선의 남편이 걱정되지 않느냐는 물음에 "노"(No)라고 답하면서도 눈물을 삼켰다.
2021년 직업학교를 마치고 19세에 징집된 니콜라이 카르타셰프는 자신의 바람과 달리 우크라이나로 파병됐다. 그가 속한 제76사단 연대는 러시아군이 저지른 부차 지역 민간인 학살과 연루됐다고 우크라이나가 밝힌 바 있다.
나중에 탈영한 카르타셰프는 집에 돌아와 방에 틀어박힌 채 컴퓨터 게임만 하다가 군사법원에서 탈영죄 집행유예를 받고 다시 전쟁터로 끌려갔다고 이복형제 드미트리가 밝혔다. 그가 우크라이나군에 생포된 뒤 포로 심문 과정에서 자신은 부차 학살에 연루되지 않앗다고 부인하는 텔레그램 영상이 나왔다고 드미트리는 전했다.
드미트리는 우크라이나 전쟁터에 두 번이나 끌려간 동생에 대해 "그는 단지 아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몇 안 되는 현지 야당 인사 중 한 명인 레프 슐로스버그는 아직 희망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침공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러시아인이 4분의 1이고 적극 반대하는 사람이 4분의 1이라면서 그 가운데 있는 나머지 50%가 전쟁에 대한 의구심으로 점점 의식이 깨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sungji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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