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경수현 기자 =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많은 서방 기업들이 러시아 시장 철수를 발표했지만 1년이 지난 현재도 적잖은 기업이 사업을 접지 않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미국 예일대 최고경영자리더십연구소(CELI) 집계에 따르면 러시아 내 약 1천600개 외국 기업 중 25% 이상이 여전히 정상적으로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유라시아재단이 우크라이나에 설립한 대학인 KSE대 부설 연구소 집계 기준으로는 현재도 운영 중인 기업이 전체의 절반에 육박한다.
작년 12월에는 미국, 캐나다, 유럽, 일본의 기업 1천400여개사 중 고작 8.5%만 전쟁 후 러시아 자회사를 처분했다는 내용의 논문이 나오기도 했다.
집계 기준이나 방식 등에 의해 수치는 달라지지만, 분명한 것은 1년째 철수하지 않고 사업을 영위하는 서방 기업들이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프랑스의 유통 대기업인 슈퍼마켓 체인 오샹이다. 오샹의 2021년 러시아 매출은 32억유로(약 4조4천억원)로 전체 매출의 10%를 차지했다.
오샹은 여전히 러시아에서 230개 매장의 문을 닫지 않고 계속 운영하고 있다.
오샹은 현지 시민에게 식품을 공급하고 2만9천여 명의 직원 고용을 유지하려면 매장 운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피력해왔다.
이에 오샹에 대한 우크라이나의 반감은 크다.
러시아 내 오샹 직원들이 모금한 물품이 러시아 부대에 전달됐다는 기사가 최근 프랑스 매체 르몽드에 실리자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은 오샹을 비난하면서 "이제는 (오샹이) 러시아의 침공 무기가 됐다"는 글을 트위터에 올리기도 했다.
또 미국 제약회사 화이자도 제한된 범위에서 제품 판매를 계속하고 있고, 네덜란드 맥주회사 하이네켄도 영업을 이어가고 있다.
기본적으로는 서방 기업이 주주 가치를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과 중국이나 인도 등 타국 기업에 점유율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욕구를 갖고 있는 데다 러시아의 국유화 위협 등에 따라 철수 자체도 쉽지 않은 점 등이 배경으로 꼽힌다.
NYT는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상황이 더 복잡할 수 있다면서 오샹의 사례를 전했다.
오샹은 매장을 폐쇄할 경우 러시아 당국에 의해 파산 상태로 간주되면서 매장이 압류되고 현지 간부들은 기소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러시아는 서방이 자국에 대해 경제 제재에 나서자 국유화 규정을 고쳐 기업의 지급 불능을 주요 사유 중 하나로 추가했다.
하이네켄은 작년 3월 철수 방침을 공표한 뒤 러시아 검찰로부터 자회사 폐쇄나 중단 결정이 고의적인 부도로 받아들여져 향후 국유화 조치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를 받았다고 전했다.
영국의 석유기업 BP는 러시아의 침공 직후 철수 방침을 발표한 뒤 작년 5월 러시아 국영 에너지 기업 로스네프트에 대한 약 20% 지분을 상각해 수십조 원의 분기 순손실을 냈지만 여전히 지분 인도 절차를 끝내지 못한 상태다.
러시아 내 외국 기업들은 자산을 매각하려면 6∼12개월이 걸리는 재무부장관 허가 절차를 밟아야 하는 데다, 특히 석유나 금융 등 전략 부문 기업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재가까지 거쳐야 한다.
물론 기업들은 철수를 추진하면서도 향후 러시아 시장 복귀도 염두에 두고 있다.
덴마크의 맥주회사 칼스버그는 러시아 사업부를 올해 중반까지 매각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지만 향후 자산을 되살 권한을 갖는 환매 규정을 계약서에 삽입하려 하고 있다.
앞서 작년 여름 러시아 공장을 판 자동차 회사 르노의 매각 조건에도 환매 규정이 붙어있다.
르노가 매각한 공장에서는 현재 다른 업체가 중국산 부품을 들여와 자동차를 제조하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ev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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